벽에 붙은 세계지도를 앞에 두고 나는 우울해졌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가고 싶은 곳도 없고 사실 갈 데도 없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너와 내가 한 것은 서로를 집요하게 사랑한 일밖에 없는데 이제 우리는 탄성을 잃은 고무줄 마냥 늘어져 있다.

 

 

'남들 욕만 하다가 내가 병신이 되어 버렸다.' '나는 3년 동안 아무 것도 못 했잖아.' '아무 것도 하기가 싫고 그냥 죽고만 싶다.' 하며 고개를 돌리고 우는 너를 어떻게 해야하나.

 

 

우리의 그 집요했던 사랑에 대해서. 그러다 결국 우리를 지쳐버리게 한 그 거대한 것에 대해서. 그것에 대해 쓴다고 하더라도 결국 우리 말고는 그것에 의미를 둘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사랑을 했느냐 보다 너와 내가 뱀처럼 엉켜 섹스를 한 것에 관심을 가지겠지. 애니팡이 터지는 소리와 쉴새없이 액정을 두드리는 사람들틈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겠다고 결심하는 현실이 더욱 소설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낭만 없는 사회, 결국 우리도 이렇게 그 사회에 한몫하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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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산부인과에서 마지막 치료를 받고 형제유통에 들렀다. 이곳은 마트나 백화점에 납품을 하는 젓갈집이다. 소매가 아닌 도매상이라 대단한 간판도 없고 근사한 진열대도 없다. 그저 유리문에 [젓갈 팝니다]라는 흘려 쓴 글씨가 있을 뿐이다. 그 문을 열면 인테리어는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바닥에 대형 냉장고가 있고 그 안에 명란젓, 굴젓 같은 10여 가지 젓갈이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이 집의 낙지젓을 제일 좋아한다. 대형 마트 3배 크기의 용기에 담긴 맛있는 이 낙지젓은 단돈 8000원. 이 한통만 있으면 보름 정도는 반찬 걱정이 없다. 참, 대신 신용카드는 안 받는다. 평소 지갑없이 신용카드 한장만 달랑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나도 그래서 몇 번 발걸음을 돌렸던 적이 있다. 오늘은 다행히 주머니에 만원짜리가 있어 기쁜 마음으로 그놈을 사고 까만 봉지에 넣어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행복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나오면서 이제 사당동을 떠나면 이것들과 다 안녕이겠다싶어 불쑥 마음이 흔들렸다.

 

 늘 야외 스피커로 라디오를 틀어 놓아 나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던 집 앞 치킨 파티. 맛이나 가격을 따져봐도 그집엔 왜 늘 그렇게 손님이 많은건지는 아무리봐도 모르겠다. 그에 비해 늘 묵묵히 점포 앞 커다란 가마솥에 건강한 소뼈를 삶고 있는 맞은편 소머리 국밥집은 왜 늘 조용한 걸까? 과일 좋아하는 나만 보면 표정이 밝아지는 행복마트 목청 좋은 청과물 아저씨도 이곳을 떠나면 안녕이다. 꼬깃꼬깃한 배추잎 33장을 건네며 "꼭 작가가 될 수 있게 기도하면서 만들어달라"던 내 말을 농으로 듣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시던 행복한 나무 세상 사장님. 그 책상에 앉아 글을 쓴 덕분인지 부족해도 작가 그 비슷한 타이틀로 살아가고 있다. 일요일 밤이면 늘 편의점 골목에 트럭을 대고 장사를 하는 새우 튀김 아저씨. 정해진 날 없이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는 10번 출구 앞 한치 아저씨도 이곳을 떠나면 모두 못 볼 얼굴들이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낮과 밤, 안과 밖할 것 없이 소란스러웠던 우리 집. 여자 나이 서른이면 시집 가서 아파트 사는 게 정답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서른엔 삐뚜름한 방 2칸 좁은 거실에서 여자 셋이 모여 살았다. 남들 시선도 상관 없고, 무서운 것도 없던 그때. 좁고 불편한 터에서 많이 웃고 떠들었다. 나라의 제를 모시는 큰 사당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마을을 대표하는 이름이 된 사당동. 사람들이 모이고, 타악하며 굿을 하던 곳이라서 그런지 이 동네는 아직도 골목 곳곳에 작은 극단이나 합주실이 제법 있다. 당장 우리 집의 양 옆으로 연기 연습실과 기타학원이 있다. 물론 이것들 역시 내 창밖 소음에 일조한다.

 

 

 이곳에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세 명이 모여 사는 집은 항상 분주했고, 그 좁은 공간에 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내 침대에서 잠을 잤던 몇명의 남자들도 있었다. 그 중 한 남자와 오래 사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 글을 쓰겠다고 서울로 와서 영등포에 혼자 방을 잡았을 땐 아무것도 쓰지 못해 누웠던 날이 많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작두 위의 무녀처럼 자판을 두드렸다. 이건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서른이 되도록 뭔가에 그렇게 뭔가에 집중하며 열심이었던 적이 없었다. 물론 나를 이곳으로 불러 준 룸메이트 수련의 응원과 도움의 힘이 컸다.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서울에선 그 사람이 사는 동네를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낮과 밤도 없이 마시고 떠드는 사람들. 맛집 골목을 끝으로 이어지는 재래 시장 때문에도 이곳은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1년 365일 소란하고 복잡하고 불안정한 이 환경과 나는 닮아 있었다. 교통의 요지답게 이 사람, 저 사람이 다녀갔다. 그것은 편리할 때도 있었고 때론 나를 괴롭게 했다. 싸고 푸짐한 맛집 골목답게 결국 이곳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며 밥벌이는 했다. 창문을 뚫고 파고드는 고질적인 거리의 소음은 적당한 스트레스가 되어 주었다.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이 동네는 내 본질과 딱 맞았다.

 

 어느 더운 여름날 애인이 했던 말이 기억 난다.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만족스러운 섹스를 끝내고 나란히 누웠을 때다. 발 아래로 미지근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애인은 이곳이 태국의 게스트하우스같다 말했다. 나 역시 이곳이 뒤라스의 소설 '연인' 중 콜랑의 독신자 방같단 생각을 자주 했다. 어린 백인 소녀와 허약한 중국인 갑부가 창밖의 소음과 함께 몸을 섞던 덥고 어두운 방. 주말 밤이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의 소음때문에 결국 우리가 더 큰 소리를 내며 섹스를 한 적도 있었다. 최승자의 시를 서로에게 읽어주던 밤도 있었다. 겨울에 함께 껴안고 있으면 전기장판이 없어도 따뜻했다. 물론 서로를 저주하며 크게 싸웠던 날도 있었다. 그 사람을 잊기 위해 사랑한 만큼 증오를 하던 밤도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여행자처럼 용감했고, 소설 속 연인처럼 깊었다.

 

 사당동을 떠난다면 이곳에서 겪었던 모든 것들은 지난 밤 꿈처럼 희미해지겠지만, 끝내 떨칠 수 없는 것들은 이미 깊이 각인 되어 있다. 놓치기 싫어 떠오르는 대로 급히 노트에 적어 남겨 둔 것도 있다. 물론 그것들은 내가 어느 곳으로 가든 함께 미래를 나눌 것이다. 어디로 가야겠다는 확실한 계획은 아직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사당동을 떠난다면'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생각대로 곧 어디론가 거처를 옮길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내가 그러했듯 그에따라 나는 조금씩 변해갈 것이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엔 책상에 앉아 남자 누나의 미니홈피에 들어간다. 

 

 

그곳의 '가족' 폴더에는 나를 알기 전 남자가 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커다란 힙합 셔츠를 입고 길거리 무대 위에 서 있는 남자. 

추석 날 친척들과 함께 거실에 어정쩡하게 앉아 있는 모습도 있다.

볶음면처럼 과감한 헤어스타일로 누나와 함께 미술관을 가기도 했다.

 

 

나라는 여자를 알기 전 남자의 모습은 어쩐지 우울해 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더 행복해 보이기도 한다.

 





 


 어떤 밤 - 판화

 

 

 


 

 

 

경비실의 작은 모니터로 너의 모습을 확인 했을 때 나는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어떻게 알고 왔던 거지? 여기를 알 리가 없잖아.' 거듭 생각을 해봐도 그럴 만한 일이 없었다. 내가 집을 알려 준 적도 없고, 사실 우리는 몇 번 만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너는 아주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가 사는 11층에 내려 그런 일을 하고 다시 돌아가다니. 나는 놀라고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모니터 아래의 숫자는 새벽 2시를 알리고 있었다. 회색 점퍼, 눌러 쓴 캡모자. 

 

 

 그 일은 거의 두 달전부터 시작되었다. 매일 밤 자정에서 아침 6시 사이. 현관문을 두드리던 두 번의 노크. 정말로 단 두 번. 그리고 정적. 넌 나에게 무엇을 원했던거지? 아니면 어떤 암시? 암호? 그런데 그런걸 나한테 매일 밤 전할 만큼  우리는 친한 사이가 아니었잖아.

 

 

몇 번의 섹스. 한 번의 피크닉. 그렇다면 먼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피크닉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장소는 한강. 우린 각자의 자전거를 끌며 걷고 있었다. 햇볕이 따가운 날이었다. 4월쯤? 주말이 아니라 그다지 붐비지 않았던 강변.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역시나 특별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다이소의 몇 천 원짜리 와인잔은 생각보다 꽤 쓸만하다는 이야기. 굳이 너가 아니어도 할 수 있고, 내가 아니어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했다. 나무 그늘을 찾아 앉아서 이야기를 이어갔고 근처의 세븐 일레븐에서 샀던 오렌지 쥬스를 마셨고 컵라면을 먹을까? 했지만 그건 관두기로 하고 얼마간 앉았다가 다시 자전거를 끌며 걸었다. 너도 그때 이미 알고 있었겠지. 그때 그 자리에 네가 아닌 누군가가 있었더라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을. 대낮 한강 데이트같은 일들은 흔하다. 어느 순간부터 이런 데이트는 우리가 서로에게 그다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만 확인받을 뿐이었다. 그런데 너는 나에게 이제라도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었나?

 

 

말이 없는 편이던 너는 내가 묻는 질문에 어쩔 수 없는 대답을 하고, 간혹 너의 사진 작업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사진은 진짜 좋아서 하는 일이야?" 라는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때는 너는 조금 웃었나? 나는 다시 직장을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네가 묻지 않았지만 나는 정말 어딘가에 출근을 하는 일이 너무 싫다고 인상을 찌푸렸다.

 

 

몇 번의 섹스(아마도 3번 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한다. 역시나 별다른 점이 없다. 미혼의 남녀 둘이 몇 번의 데이트를 하고 술을 마시다가 근처의 모텔로 들어가서 섹스를 한다. 뒷날 정오에 가까운 시간 모텔을 나와 햇볕에 눈을 찡그리며 그 앞 국밥집으로 들어간다는 스토리에 그와 나를 대입시키면 된다. 그랬다. 너는 그저그런 남자였고 나 역시 너에게 그저그런 여자였을 것이다. 운명같은 만남도 없었고 인연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대단한 우연도 없었다. 그렇게 몇 번 만난 뒤 우리는 어느 순간 연락이 뜸해지게 되었고 나는 너를 잊고 있었다. 그런 네가 감시카메라에 잡히니 나는 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다.

 

-

 

네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건 세 달전 쯤 새벽이었다고 했다. 나는 먼저 알아차리진 못했다. 그때쯤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자정 이후의 시간은 죽어있는 시간과 같았다. 직장은 언제나 나를 지치게 만든다. 일을 시작하고는 잠자는 시간마저 일의 연장이었다. 푹 잠을 자지 못하면 다음 날이 괴로웠다. 출근은 이렇게 내가 가장 사랑했던 잠자는 시간마저 내 것이 아니게 만든다. 그 소리를 먼저 들은 건 앞 집1101호 여자였다. 어느 휴일 오전 앞 집 여자가 초인종을 눌러 며칠 전부터 새벽마다 누군가가 우리집에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두드리는 시간이 일정치 않고 뭔가 소리가 들려 확인 창으로 확인을 해봐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일정하게 두 번의 노크라는 것. 그 얘기를 듣고부터는 나 역시 새벽마다 잠을 잘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첫째로 무서웠다. 이제껏 내가 상처 줬던 사람들을 다 떠올려 봤다. 그런 생각을 하며 깜박 졸다가 악몽을 꾼 적도 많았다.

 

어느 날은 새벽 1시. 그리고 그 뒷날은 새벽 4시. 처음에는 노트에 시간을 적어서 어떠한 행동에 공통점을 찾아 의미를 찾으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시간에는 어떠한 규칙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어느 날은 용기를 내서 현관문 구멍에 눈을 뜨고 몇시간 동안 지켜 본적도 있다. 하지만 역시 무서워져 그냥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어떤 날은 전혀 찾아 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런 밤들이 반복되다 보니 직장생황이 순탄할 수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결국 입사한 지 두 달만에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직장을 그만 두고 새벽에 깨어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이상하게 그 노크 소리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안심이 되었지만, 어느 순간에는 좀 서운한 감도 없지 않았다. 그 즈음엔 다른 남자들을 만났다. 그러다가 한 남자와 순조롭게 연애를 하고 새벽에는 조용히 일기를 쓰며 다시 안정을 찾기 시작했을 때 다시 그 새벽의 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예전보다 조금 더 쎄진 듯한 두드림. 다시 매일 빠지지 않고 찾아왔다. 시간대도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로 좁혀졌다. 이제는 정말 그 시간대에 현관문 확인 구멍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누군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그 방법은 너무 무섭다.

 

그러다 오늘 오전.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 출근 길이던 앞집여자와 한 엘리베이터에 탔다. 앞집여자는 요즘에도 누군가 노크를 하는 것 같던데 경찰에 알리는 것이 어떻냐고 했다. 맞아. 앞 집 여자는 또 무슨 죄람. 이제 뭔가 조치를 취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쓰레기를 버리고 찾아 간 곳이 경비실이었다. 나는 경비실 아저씨에게 CCTV를 확인할 수 있냐고 했다. 처음에는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것이 먼저 인가? 라고 생각했고, 또 일반인이 이렇게 CCTV 녹화 분을 바로 확인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쉽게 확인이 되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경비아저씨의 눈이 경비복 가슴 주머니에 은색 호루라기처럼 반짝인다.

 

'이렇게 쉬울 줄 알았으면 진작 알아볼걸.' 이란 생각을 했을 때, 경비 아저씨는 어제 새벽 2시경의 CCTV를 플레이 해주었다. 회색 점퍼를 입고 캡모자를 푹 눌러쓰고 왼손에 가방을 들고 아파트 입구를 걸어가는 남자. 이것은 아파트 입구의 CCTV에 잡힌 모습이다. 이렇게 봐서 그런지 남자의 걸음걸이는 누가봐도 이 아파트 주민의 걸음걸이가 아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 잡힌 남자의 모습. 그리고 역시나 내가 사는 11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바로 그 행동을 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찰나 다시 엘리베이터 속으로 들어왔다. 군더더기가 없고 날렵한 동작이었다. 그리고 다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경비실을 지나 사라졌다.

 

 

놀랐지만 오랜만에 보는 남자의 모습에 괜시리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나도 이상하다. 어찌보면 귀찮고 반복적이면서도 소용없는 짓을 하는 그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내가 몇 번 봤던 그 남자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를 정말 괴롭히고 싶었다면 차라리 더 지속적으로 문을 여러번 두드린다던가, 아니면 분뇨를 집 앞에 둔다거나, 또 아니면 차라리 집을 나가는 나에게 해코지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남자는 스스로 귀찮을 수 있는 이런 짓을 하는 것이지?

 

마음씨 좋은 경비 아저씨는 이 녹화 비디오를 토대로 경찰에게 신고를 하라고 추천해 주셨지만 나는 일단 알겠다고 대답만 하고는 경찰 신고는 하지 않기로 한다. 경비실을 나와서 쓰레기를 버리고는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2주전부터는 빠짐없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으니, 아마 오늘 역시 그는 올 것이다. 일단 나는 식탁 옆 벽에 걸려진 달력 중 다음 달 달력을 한 장 찢었다. 그리고 검은 유성펜으로 크게 글자를 썼다. 그리고는 새벽2시가 되면 이것을 현관문에 붙일 생각이었다. 이 방법이 가장 좋은 해결책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문은 열려 있어요. 들어 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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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창 글쓰는 연습을 할 때 썼던 글이다.(2012년 봄?) 매일 일정한 시간에 샤워를 하고 몸과 마음을 비우고 자리에 앉아 10분동안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마구 나열하는 방법. 그리고 그 다음 주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들을 마구 나열하였는데 이 이야기가 나왔다. 보통 한 단락 완성하는데도 몇 시간씩 걸리는 내가 10분만에 이런 이야기를 쓰다니!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당시 섹스칼럼 쓰는 밤비와 그 외 글쓰는 친구들과 함께 했던 방법이었는데 나의 게으름으로 스터디는 깨졌다. (그들은 지금도 하고 있나 모르겠다.) 내년엔 다시 글쓰는 연습을 시작할 예정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가장 하고 싶고 잘 하고 싶은 일은 글쓰기가 유일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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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장병 여러분들께.

 

 

이렇게 위문편지를 써 본 게 정말 얼마만인지요. 그게 아니라, 이렇게 누군가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해 쓰는 편지가 정말 얼마나 오랜만인지요. 초등학교 시절 이 계절에는 "국군 아저씨들께." 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제법 자주 쓰곤 했었는데 어느덧 국군아저씨들이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동생들이 되어 있네요. 게다가 이번에는 "섹스 칼럼"과 함께 인사를 하게 되다니! 인생은 정말 놀라워요. 그래서 더 재미있고요.

 

 

안녕하세요. 저는 글 쓰는 여자 김얀 입니다. 그리고 이번 달부터 병영 매거진 HIM에 연재하게 될 <우주 최고 재미진 섹스 칼럼>은 저에게 특히 의미가 있는 글입니다.

 

 

2년 전이던, 그러니까 제가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문득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니던 직장을 무작정 그만두고 서울로 왔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좋은 글을 쓰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개인 블로그에 이런 저런 글을 썼습니다. 그러다 심심한데 그냥 야한 이야기나 한번 해볼까? 해서 글 하나를 썼는데 그 이야기 한 편이 SNS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큰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어느덧 섹스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을 갖고 여러분들에게 편지까지 쓰게 되었네요.

 

 

사실 저는 섹스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랍니다. 문학을 사랑하고 소설가가 되고 싶어 무슨 글이든 쓰고 싶어 혼자 일기 쓰듯 마구 쓰던 차에 이렇게 섹스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을 갖게 되어 어리둥절하기도 했어요. 물론 부담이 된 적도 있고요. 특별한 교훈이나 정보가 없는 재미삼아 써 본 한 편의 글로 여러 사람들의 관심과 다양한 매체에서 러브콜을 받게 된 것도 저도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구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섹스'란 남녀노소 누구나의 관심사이고 우리 생활의 한 부분인데 이제껏 누구 하나 당당하게 이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었더군요. 사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인데도 무조건 감춰야 했죠. 특히나 여자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욕구를 감춰야만 정숙한 여자라고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었고, 때문에 남자들은 포르노나 돈으로 섹스를 사고파는 데서 조금씩 얻는 왜곡된 정보를 정답으로 알고 있었죠. 기성세대들은 성에 있어서는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고 숨기기에 바빴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요즘 애들은 성의식이 땅에 떨어졌다."라고 말하는 어른들이야 말로 음지에선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줬죠. 주변을 둘러보면 편의점만큼 많은 게 러브 모텔이고, 여자가 나오는 노래방, 안마방, 2차야 말로 그들이 만든 거 이상한 성문화 아닌가요?

 

 

저는 어릴때부터 이런 것들이 항상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섹스란 생명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경건하고 조심스러운 일이지요. 하지만 지난 밤 섹스를 한 커플 중 단지 '생명을 만들기 위해' 섹스를 하는 커플들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신이 되면 어쩌지?' 하고 피임을 고민했을 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성에 대해서 무조건 감추려고만 하지 말고 남, 녀 모두가 밝은 곳에서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서로 관계를 하는 둘 사이에서만이라도 좀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무리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이런 이유 때문에 부족함이 많은 제가 여러 사람들의 응원을 받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관심은 회를 거듭할수록 저에게 글을 쓰는 사람으로써의 책임감을 주었습니다. 더욱이 제가 이 제 글을 보고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고 자신의 경험담과 고민들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도 그동안 친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개인적인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습니다. 너무 솔직한 거 아니냐의 친구들의 우려도 있었지만, 결국 저는 이 글 덕분에 더욱 즐거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남녀 관계 아니, 성별을 떠나 인간관계와 인생이란 것에는 정답이 없더군요. 확실한 가치관을 가지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솔직하게 살아 가는 게 정답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너무 뻔한 통계자료를 이야기 하는 것 보다 제가 경험하고,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더 현실적이라 제 이야기들도 가감없이 넣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서울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긴 [우주 최고 재미진 섹스 칼럼]이 더욱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른 두 살인 지금까지도 좌충우돌 여기 저기 부딪쳐 상처를 받아가며 어른이 되어 가는 저의 현재 진행형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는 여러분을 존중합니다.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순결을 지키는 사람들, 각자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본인만의 성적 취향, 그리고 돌아보면 후회뿐인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까지. 저는 여러분을 존중하고, 이해합니다. 특히나 이제 20대 초반, 저와 다른 성별의 우리 장병들께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읽혀지고 어떤 영향을 줄 수 있게 될 지 개인적으로 기대가 큽니다.

 

 

 

존경하는 국군 장병 여러분들, 곧 다가올 겨울 단단히 대비하시고 마음속에는 아직 남아있는 봄의 꽃밭을 잘 가꾸시길 바랍니다.

 

 

 

2013. 10. 사랑을 담아. 김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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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지 HIM에 섹스 칼럼 연재 제의를 받고 오랜만에 설레는 기분이었다. HIM은 우리나라 국방부가 지원하는 육.해.공 군인들의 병영잡지로 60만 국군 장병들이 내무반에서 내 글을 보게 된다는 말이었다. 사실 나는 잡지나 신문의 칼럼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칼럼보다 에세이를 좋아하고 책도 소설책만 보는 나는 심지어 좋은 소설이라 생각하는 것도 주제나 서사 위주가 아닌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이나 전체적인 글의 느낌을 보기 때문에 칼럼은 쓰면서도 어렵고 재미가 없을 수밖에. 게다가 이제 섹스칼럼이면 신물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HIM의 제의를 흔쾌히 수락한 건 내 글이 앞으로 이 나라의 주역이 될 청년들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A4기준 4장이라는 분량이 조금 걱정이기도 했지만, 내용면에 있어서는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했기때문에 부담이 적었다. 사실 섹스칼럼으로 A4 4장을 채우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보통 잡지사의 칼럼은 A4용지 기준 1장 내외) 게다가 알고보면 섹스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는 주제란 다 거기서 거기다. (우리가 섹스할 때 주로 하는 체위가 몇 개 안 되는 것 처럼) 그래서 어떤 내용으로 시작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에 내 블로그에 잠자고 있던 [우주 최고 재미진 섹스칼럼]이 생각났다.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나에게 갑자기 섹스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을 안겨 줬던 그 문제작. 앞서 얘기 했지만, 2년 전 나는 도저히 글을 쓰지 않고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었다. 당시 나 혼자 살기엔 부족함 없던 월급도, 나를 사랑해주던 남자친구도 다 포기하고 였다.

 

 

서른살 봄이었다. 글을 써서 먹고는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방법도 몰랐고 신춘 문예를 준비하려니 사실 일기 한번 제대로 써 본적이 없던 터라 힘들었다. 영등포 좁은 원룸에 몇 달째 틀어박혀 천장만 바라보고 있을 때 사당동에 사는 수련이가 나를 불렀다. 안그래도 월세나 관리비 때문에 다 포기하고 울산으로 내려가야 하나 하고 있을 때 였다. 처음에 수련이가 일단 블로그를 만들고 글을 쓰라고 했을 땐 그냥 흘려 들었다. 내가 존경하는 어떤 문학가도 블로그로 시작해 작가가 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신춘문예나 출판사의 문학상 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고는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그때 수련이가 일단 뭐든 글을 써야 작가지. 그게 어디든 어떤 내용이든 일단 부지런히 써야 작가라고 했다. 사실 말이 소설가 지망생이었지 그때까지 어떤 글이든 A4 한 장을 채워 써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개인 블로그를 만들고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신인 작가들의 처녀작은 거의 본인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처럼 이제까지 내가 그나마 남보다 많이 한 거라곤 여행가서 방황한 것 밖에 없었다. 제목은 [야하고 이상한 여행기]로 처음에는 방콕의 람부뜨리 로드 이야기였고, 두 번째가 런던 빅벤 아래에서 서른살을 맞이했던 이야기였다. 일일 방문자 수는 많아야 50명. 그것도 글 하나가 업데이트 되면 나랑 수련이는 친구들 한테 직접 전화를 해서 와서 보고 댓글도 남겨달라고 일일이 부탁을 한 거였다. 일주일에 하나씩 쓰자는 계획이었는데 여행기 두 개를 쓰고는 너무 힘들다며 그냥 재미삼아 야한 이야기나 써 볼까? (그때는 수련이가 퇴근하고 집에 와서 내가 글 쓴 걸 확인했다) 그냥 수련이를 웃겨주자는 생각에 수련이의 트윗 아이디도 넣고 내 주변 친구들 이름을 넣어 쓴 글이었다. [우주 최고 재미진 섹스 칼럼 _ 채식 주의자의 저녁식사]는 그렇게 쓴 글이다.

 

 

그런데 이 글 하나가 남희석씨의 RT를 받고 트위터에서 돌고 돌아 일일 방문자 수가 5000명이 넘은 것이었다. 덩달아 내 트위터 팔로워 수가 눈깜작할 사이에 늘었다. 수련이와 나는 너무 놀라서 핸드폰도 집어 던지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다음 이야기는 언제 나오냐고 물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칭찬도 많이 들었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니가 쓰고 싶은 건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 사람들이 너를 너무 가볍게만 생각하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도 했다. 나 역시도 그런 것들이 걱정되긴 했지만, 누군가 내 글을 같이 봐주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정말 놀랍고 신기했다. 물론 말할 수 없이 기쁘기도 했고.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씩 블로그에 글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내 인생 처음으로 쓰는 긴 글이었고, 처음부터 연재를 염두하고 쓴 글이 아니라 방향을 잡아 나가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3-4회쯤 왔을 때는 영화사에서 연락이 왔다. 책으로 내고 싶다는 출판 관계자들도 만났다. 시트콤으로 만드는 것도 좋겠다는 PD님들도 있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반응에 나는 마구마구 흔들렸다. '아, 이제 나는 완전 떴구나. 이젠 드디어 글로 먹고 살 수 있겠다.'하고 혼자 김칫국도 많이 마셨다. 하지만 결국 제대로 된 글도 써 본적이 없던 신인이 여기저기에 흔들리다 보니 글은 자꾸 산으로 가고, 단순히 재미있어서 쓰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스스로도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물론 덕분에 여러 잡지사에서 러브콜이 오긴 했지만, 전부 섹스에 관한 글이었다. 점점 내가 가려는 방향과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 글 쓰기를 중단하고 있을 때 다행히 내가 원하던 출판사와 여행기를 계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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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왜 김얀인가.

 

   본명은 강경민이에요. 그래서 제 손목에 ㄱ ㅕ ㅇ ㅁ ㅣ ㄴ이란 문신을 새겼는데 사람들이 거꾸로 보고 ㄱ ㅣ ㅁ ㅇ ㅑ ㄴ 이라고 읽더라고요. 그래서 탄생한 이름이에요.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재밌게 봤다. 내용은 사실인가.

 

   반반이에요.(웃음) 모두들 궁금해하더라고요. 정말인지. 사실 반은 제가 겪은 이야기고 반은 꾸며낸 이야기예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이야기가 사실이고 아닌지 밝힐 생각은 없어요.

 

 

서른 살, 한국을 떠나 타지를 돌아다니며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첫째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저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예를 들면 누구의 딸, 누구의 여자친구 등등 한국이란 곳에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 혼자 타지에서 정말 '나'로서 존재하고 싶었어요. 돌이켜보면 홀몸으로 좀 무모한 여행이기도 했지만 그게 그 당시의 날 표현할 수 있는 모습 같아요. 마찬가지로 글을 쓰게 된 것도 틀에 박힌 일에서 벗어나 뭔가를 쓰고 싶었어요. 어릴때부터 책을 좋아했거든요. 거기에 제 관심사가 여행과 사람이예요. 그러다 보니 여행 가서 만난 이들에 대해 쓰게 된 거죠.

 

 

 

최근 출연한 방송에서 남녀에 관해 많은 얘기를 했던데 본인은 어떤 여자라고 생각하는가.

 

   저는 솔직한 여자예요. 개방적이기도 한 것 같고 그래서 행복해요. 아직까지 한국 여자들은 정해놓은 틀에 자신을 맞추는 것 같아요. 얼굴, 성격까지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성상에 맞추려 하고. 그렇게까지 해서 남자를 만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본연의 모습도 아니고. 전 그냥 솔직해요. 제가 어떤 모습이든, 이 세상에 저 하나 사랑해줄 사람 없겠어요?

 

 

사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먼저 색깔로 본다면 사랑은 검은색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에는 모든 감정이 합쳐져 있거든요. 따뜻한 감정들이나 섹스 말고도 질투나 증오 같은 것마저 사랑에 포함되어 있죠. 모든 색을 합치면 검은색이잖아요? 사라도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인생의 목표에는 언제나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많은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걸 인생의 목표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분명 과거의 모든 문학을 비춰본다면 언제나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었는데.

 

 

그렇다면 이상형이 궁금하다.

 

 

   전 창의적인 사람이 좋아요. 체 게바라의 명언 '리얼리스트가 되라,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가져라.'처럼 열정적이고 말도 안되는 꿈을 가진 사람이 좋아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잖아요. 몇몇 남자는 여자를 얻기 위해 대기업을 꿈꾸로 외제차를 사는 게 목표인 것 같아요. 그런 남자는 정말 매력 없죠. 그런 건 정말 별로예요.

 

 

이상형을 실제로 만나본 적 있는가.

 

 

   네. 제 책 마지막 부분을 보면.. (웃음)

 

 

남자란 어떤 동물이라고 생각하는가.

 

   굉장히 솔직하고 순수하고 본능적인 것 같아요. <위대한 개츠비>를 보세요. 세상에 어떤 여자도 개츠비와 같은 사랑은 하지 못해요. 여자는 남자에 비해 계산적이고 현실적인 건 분명해요. 하지만 남자들은 정말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모든 것을 다 거는 개츠비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다음에 내고 싶은 책이 있다면.

 

 

   제가 소설가 지망생 시절에 블로그에 재미삼아 쓴 <우주 최고 재미진 섹스 칼럼>이라는 글 하나로 어쩌다 보니 섹스칼럼니스트가 되었어요. 근데 사실은 아직도 제 꿈은 소설가예요. 정말 멋진 소설을 쓰고 싶어요.

 

 

좋아하는 소설가가 있는가.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고등학교 때 읽었는데 그 이후로 제 삶이 통째로 바뀐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 따지면 또 다른 아버지죠. 낳아주신 아버지 말고, 제 생각을 키우고 깨닫게 하고 다르게 생각하게 하고. 제 삶에 영향을 많이 끼친 작가예요.

 

 

이제 서른 초반이다.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항상 사랑을 쫓으며 살아가고 싶어요. 자기주도적으로 즐겁게. 물론 아픔이 있어야 즐거움의 맛도 아는 거겠죠. 온몸으로 인생의 모든 바람을 맞으며 제 삶을 살 거예요.

 

 

 

 

 

 

editor 유현

photo by 김영훈

MAPS

December 2013

 

 

 

 

 

모든 것은 평상시와 같다.

 

아침이면 눈을 뜬다. 배가 고프면 무언가를 입에 넣고, 몇 시간 뒤엔 어김없이 먹은 것들을 배출한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과 퇴근을 한다. 그곳에서 매일 정해진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밤이 되면 눈을 감는다.

 

"그러고 보면 인생 진짜 별 거 없어. 누구나 때가 되면 먹고 싸고 자고 다 똑같지 뭐. 결국 사는 건 다 똑같아. 지겨운 거야." 라고 말했던 나였지만, 그 반복되는 일상 틈틈이 우리는 만났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만나지 않았으면 절대 없었을 어떤 순간들을 함께 보냈고, 서로가 아니었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이상한 감정들을 함께 느꼈다. 결국 지금 우리는 헤어졌고,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 왔지만.

 

 

사실 그와 나는 혼자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나도 그렇지만, 혼자 있는 걸 좋아하던 그 사람 역시 어떻게든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그리움까지도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직 그를 사랑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랑인 건지, 사랑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사라지는 지 알 수가 없다. 어느 것이 사랑인지 어떤 감정이 사랑인지 꼬집어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언젠가부터 내 글을 보는 것이 고통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글을 쓰는 내가 흥미로워 끌렸다고 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초반부의 이야기였다. 연애 칼럼을 쓰는 사람으로 연애에 관한 글을 쓰다보면 아무래도 과거 남자 이야기들을 얘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픽션인 부분이 더 많았지만.  베드신을 찍는 영화배우들의 배우자들의 마음이 비슷한 마음일까? 어쨌거나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본다면 나 역시 그의 옛 과거를 읽는 일이 그렇게 즐거운 일만은 아닐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한동안은 나도 내 인생에서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글쓰기가 언젠가부터 의미 없는 일로 느껴졌다. 내 감정을 기록하여 남겨 두는 일. 그리고 가끔 들춰 보는 것.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남에게 보여 줘야 하는 일.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큰 상처를 받는 일.

 

 

하지만 우리 둘 만이 알고 있는 것들. 함께였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그 순간들까지도. 결국 우리가 아니라면 누가 기억해줄까? 그래서 결국 나는 다시 펜을 든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코를 맞대고 누워 수다들 떨던 어떤 새벽. 결국 이제는 낮과 밤처럼 서로 갈라져버린 지금. 나는 너에게 남쪽 바다를 처음 보여준 여자로 기억되고, 너는 나에게 에이징이 잘 된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알려준 남자로 기억 되겠지.

 

 

함께 걸었던 많은 골목길들. 그곳에서 만났던 많은 고양이들. 자주 갔던 집 앞 공원. 그곳 벤치에 누운 우리를 무심히 지켜보던 나무들. 여름휴가. 남해. 창문 밑에 죽어가던 커다란 벌이 있던 민박집. 그곳에서 먹었던 홍합탕과 갈치조림.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이 그렇게 싫어하던 내 글 속 또 다른 주인공으로 남게 되고, 나는 다시 누군가를 아프게 할 과거의 남자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 진짜 별 거 없어. 누구나 때가 되면 먹고 싸고 자고 다 똑같지 뭐. 결국 사는 건 다 똑같아. 지겨운 거야." 언젠가 내가 했던 말처럼 사랑도 이별도 결국 그런 것일까?

 

 

하지만 이렇게라도 메모해두지 않으면 영영 없었던 일이 되어버릴 지 몰라 오랜만에 펜을 들어 글을 쓴다. 결국 우리가 아니라면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을 우리가 함께 했던 순간들에 대해서.

 

 

 

 

 

 

Istyle24 패션웹진 Snapp

January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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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웹진 snapp에서 1년 동안 연재했던 색콤달콤한 연애는 완전히 나의 일기장이었다. 글의 주제나 구성에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쓰고 싶은 걸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물론 마감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고통이지만)

이건 아마 2013년 1월, 2월 정도 였던 것 같다. 당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때 썼던 이 글은 좋아한다. 진심을 담아서 연필로 노트에 썼던 기억이 있다.

 

snapp에서 함께 했던 일러스트는 RD(@rdrdrdrdrdrdrd)라는 동생.

 

 

 

 

 

 

 

[인터뷰] 월간 마리끌레르 March 2013

 

 

 

 

 

 

 

Face Of Woman 야한 여자, 칼럼니스트 김얀

 

 

 

그녀는 야한 글을 쓴다. 연애와 섹스에 대한 절반은 픽션이고 절반은 논픽션인 글이다. 자유롭고 섹시하면서도 건강한 시선을 가진 그녀의 글은 블로그에서 인기를 모으며 각종 매체로 옮겨갔고, 올해는 그녀의 책이 두 권 출간 될 예정이다. 한 권은 열세 개 도시에서 만난 열세 명의 남자에 대한 여행기이고, 다른 한 권은 김얀이 실제로 서른 살에 만난 세 명의 룸메이트들과의 일상에서 소스를 얻은 소설이다. 원래 치기공과를 졸업하고 울산의 치과에서 일하던 그녀는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살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일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제가 변해서인지 주위에 모여드는 사람들도 달라졌어요. 울산은 공업도시 잖아요. 대기업 다니는 아버지를 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부모님과 비슷한 삶을 쫓아가고 있었어요. 점 점 차를 좋은 차로 바꾸고, 집 평수를 넓혀가는데 행복감을 느끼고 그런 것을 부러워하는. 그런데 서울에서 만난 친구들은 타투이스트, 사진 작가, 연극하는 친구들, 뮤지컬 배우, 극작가, 만화가들은 자신의 일 얘기를 하면서 즐거워하더라고요. 그게 참 멋있고 행복해 보였어요." 그녀는 다른 사람의 기준을 훔쳐보고 행복을 비교하는 대신에 모든 관심을 자신한테 쏟고 있는 중이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뭘 할 때 가장 기분이 좋은지. 시간이 지나서 나이를 먹었을 때 어떤 얼굴을 가지고 살고 싶은지 말이다.

 

 

 

 

 

 

 

월간 마리끌레르 March 2013

                                                                                                                Editor/김지선.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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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인터뷰. 평소엔 사진도 잘 안 찍는 편이라 사진 촬영때문에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그래도 역시나 프로는 다르구나. 노련한 사진 작가님 덕분에 무사히 종료. 역시 나는 집에 짱 박혀서 글 쓸 때가 가장 행복하구나를 다시 한 번 느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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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름, 한달 간의 여행이 나에게 남긴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석장의 일기와 약간의 사진. 그리고..

어쨌든 가장 확실한 것 한가지는 엄마에게 갚아야 할 빚이 200만원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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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장의 일기. 2G 메모리칩에 갇힌 몇장의 사진.

추억이라 부르기엔 민망한 몇 가지 기억.

 

 

 

 

 

#

 

 

 

 

내 상상 속의 나는 아주 우아한 귀족이 되기도 하고, 어느 기업의 카리스마 넘치는 사장님이 되기도 한다. 한국의 전도유망한 여류작가가 되어 유럽을 순회하며 강의를 하기도 하고, 뭐 또 한편으로는 그냥 동네 약국의 접수원이 되어 보기도 한다. 작은 빵가게 사장님이 되어 보기도 한다. 내 상상 속에서 나는 자유자재 변신의 귀재다.

 

요즘 같이 밖이 추운 겨울엔 집에 누워 천정을 보며 상상을 하는 일이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일이다.

특히나 요즘같이 지갑 속이 텅텅 빈 날에는.

 

 

 

 

 

2011.12.14   4:23am

 

 

 

 

 

내일은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나를 배 안에 넣고 있을 때 어떤 꿈을 꿨는지 자세히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저녁을 먹은 후엔 전혜린 평전을 다시 읽고 밤에는 누군가에게 술을 따르러 갈 것이다.

 

 

 

 

 

#

 

 

 

 

지금 내 나이의 엄마의 뱃 속엔 내가 있었다. 나의 태몽은 엄마가 감나무 아래서 주홍빛 감을 치마폭에 주워 담았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일 중 유독 감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건 조금 이상하다. 하지만 태몽이 그렇다하니 나는 때때로 내가 아직 떫은 맛을 내는 덜 익은 감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 꿈은 어서 빨리 속이 꽉 찬 홍시가 되어 단단한 씨까지 그렇게 녹여버리고, 금방이라도 뚫릴 것같은 얇은 껍질 안에서 위험하면서도 편안하게 익어가고 싶다. 그러다 좋은 날 바람을 맞으면 아무런 저항도 미련도 없이 그저 툭 하고 뛰어내릴 수 있는 그런 홍시가 되고 싶다. 그곳이 진창이든 색이 좋은 낙엽 위든.

 

 

 

 

 

#

 

 

 

 

 

누군가에 대한 마음이

의심과 집착으로 커져 나간다면

그건

사랑이 얕아서 일까 아니면 반대로

사랑이 깊어져서 일까?

 

 

 

#

 

한 계절만에

가장 활짝 웃는 모습과

가장 처연히 울던 모습과

가장 불 같이 화를 내는 모습을 다 보여줬다면

나는 그 남자에게 마음을 다 줬던 것일까. 아니면,

그 남자의 마음을 다 받았던 것일까.

 

 

 

 

 

 

2011.01.06 04:00pm

 

 

 

 

 

 

누군가가 나를 보고 섹스'에 관한 이야기로 인기를 끈다고 했다. 관심 받고 싶어 죽겠나 보군. 이라고도 했고.

사실 나는 인기도 관심도 별 필요 없는데

섹스라는 단어를 말했다고 해서 인기과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자체가 나는 조금 신기할 뿐이다.

 

결혼한 사람들은 밥 먹듯 하는 것이 섹스고,

누군가는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듯 돈을 주고 사는 게 섹스인데,

섹스.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ㅡ 

 

 

 

 

 

 

#

 

 

 

 

 

어제 봤던 나는 완전한 내가 아니야.

지난 주에 네가 만났던 나 역시 사실 내가 아니야.

나도 나를 30년이나 봐 왔지만,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30년동안 그렇게 거울을 달고 살았지만 말이야.

 

2011.01.04

 

 

 

 

 

 

싸이월드 사진첩엔 방콕의 오성급 호텔 방에서 하이힐을 신고, 등이 훤히 파진 원피스를 입은

짙은 화장에 컬이 들어간 머리결을 만지며 미소 짓고 있는 내가 보인다.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은 생각하겠지?

팔자 좋은 년. 대체 일 년에 몇 번을 비행기를 타는 거지? 돈이 그렇게 많나?

 

하지만 모르겠지. 이 노트를 보지 않는 이상.

 

 

 

저 때, 나의 친구들이 방콕의 그 호텔로 오기 전까지.

나 혼자 땡볕을 걸으며, 구겨진 바트를 세고 또 세고.

결국 큰 맘을 먹고 35바트 쌀국수를 오래 씹어 먹고.

호텔로 가는 가장 저렴하다는 콩나물 시루만큼이나 빡빡하게 사람들을 태운 수상버스에서 배멀미를 참으며.

친구의 이름을 대고 배가 고파 덜덜 떨리는 손으로 호텔 방 안 유일한 무료 커피를 연달아 마시며.

어디 나갈 돈도 궁금한 장소도 없던 한심한 여행자였던 내가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 누군가를 억지로 기억해내어 편지를 쓰고 있었던 나를 어떻게 상상이나 할런지.

 

보이는 것은 어차피 껍질. 가면.

 

 

 

 

 

 

 

2011년 겨울, 새벽의 일기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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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은 항상이다. 치과에서 오전,오후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퇴근 길 집으로 가는 2호선, 사람들의 지친 어깨를 보면서도. 집으로 가기 전 항상 들리는 동네 김밥집 기름낀 테이블 위 끈적한 수저통을 바라보면서도.

 

 

 

그런데 방으로 돌아오면 씻지도 않고 제일 먼저 침대에 눕는다. 지하철 의자에 세균이 그렇게도 많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이게 외출복이거나 말거나 그대로 침대에 눕는다. 이미 사라진지 오래인 태양처럼 내 전신은 지쳐 가라앉는다. 열어 놓은 창문으론 오늘도 역시나 집 밖의 모든 소음들이 천천히 내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내 방은 사당동 먹자골목. 그곳의 모든 소음이 모이는 방. 집 앞 치킨집에 틀어 둔 라디오 광고 소리. 지나가는 행인의 슬리퍼 끄는 소리. 요란하게 떠들며 달리는 오토바이 엔진소리. 좁은 골목길 어렵사리 주차해 둔 차의 시동 켜는 소리. 때때론 짧게 울리는 클락션. 주말 밤이면 아랫집 실내 포장마차 취객들의 고함. 내 방에는 정말 무슨 소음을 끄는 자석이라도 있는지 창문을 열어두면 끈끈히 또 끊임없이 소음들이 내 방안으로 몰려 든다.

 

 

 

사실 글을 쓰지 못하는 건 소음때문이 아니다. 내 하루의 골든 타임. 내 안에 잠시라도 머물러 있던 에너지를 그 대낮 테헤란로에 쏟아 버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글쎄...... 물론 피곤하고, 지치고. 또 이런 상태라면 시시한 것을 쓰게 될까봐 겁도 나고. 허리도 아프고. 물론 손목도 아프고....... 그래서 나온 책이라도 팔아야지, 올해는 그냥 책이나 팔면서 보내자며 트위터를 만지작거리다가 외출복 차림 그대로 눈을 감아버린다. 사실 이것은 쉽고 편한 하루다. 어떤 날은 그래도 써보자,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노력하고 연습하며 글을 쓰니? 하며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책상 앞에 앉는다. 그러다가도 뭐 굳이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살아야 하나 싶어 다시 그냥 누워버린다.

 

 

 

먹고 살겠다고 다시 돌아간 직장. 벌써 1년이 지났다. 남들은 다들 일도 하고 그 짜투리 시간에 집중해서 글도 쓴다는데. 나는 그게 너무 힘들다. 하고 싶은 건 글쓰기밖에 없고 잘 하고 싶은 것도 글쓰기밖에 없는데...... 내 하루에서 몸과 정신이 가장 반짝이는 시간을 글쓰기에 쏟고 싶지만, 지금과 같은 생활로는 답이 안 보인다. 퇴근 후 지친 몸은 미운 일곱살 아들처럼 내 마음을 따라주질 않는다. 그래서 역시나 드러누워 버린 오늘.

 

 

 

발 밑으론 선풍기의 약한 바람. 머리 위론 열어 놓은 창문으로 잔잔한 미풍. 그런데 또 어느 순간 창밖 소음들이 스물스물 몰려들어온다. 치킨집 주인 아줌마의 톤이 높은 웃음 소리. 삼삼오오 몰려가는 젊은 청년들의 잡담소리. 방정맞게 뛰어가는 어린아이와 나무라는 젊은 엄마의 잔소리. 그 뒤를 쫓는 자전거의 벨소리. 어느새 소음은 또 다시 열어 놓은 창문을 타고 엉금엉금 모여 든다. 그렇게 내 주변으로 내려 앉아 지친 나를 괴롭힌다. 이 작은 방 안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조용히 나무라며, 한편으론 낮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응원하며. 그렇게 침대 위에 가라앉아 누운 나를 집요하게 깨우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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