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별다른 목적 없이 쓰는 글

 

 참 오랜만이다. 마감에 쫓겨 쓰는 글이 아니고, 돈을 받아 쓰는 것이 아닌 글은. 사실 요즘 누군가에게 12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꾸준히 메일을 썼다. 특별한 내용은 없지만, 목적은 뚜렷했다. 그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여주는 게 과연 가능할 일 일까? 하지만 나는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을 봤고, 지금은 내가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물론 그 사람이 내 메일을 통해 내 '마음'을 볼 수 있을지 아니면, 도중에 내가 그만 둘 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진짜 목적 없이 쓰는 글이 있을까? 종일 집에 누워있다가 별다른 목적 없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이 글도 목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책에서도 읽었지만, 일기를 쓰는 것은 몸과 마음의 건강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내 속마음을 털어 놓는 다거나, 상담을 요청하는 일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남의 속마음을 듣거나, 상담을 해 주는 일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자신의 문제점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고, 그것을 해결하는 법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렇게 행하는 게 어렵고 용기가 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 같다. 잘 쓰려고 쓴 글이 아니라 생각나는 대로 막 쏟아내고 나면 어느새 조금 진정이 된다. 그리고 다시 읽어보면 내 생각이나 행동에 문제점이 보이기도 하고. 물론 그것을 바로 고치는 일이야 힘들고, 진짜 원하는 바도 아니지만 어쨌든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이다.

 

 

 요즘엔 사실 글을 거의 쓰고 있지 않다. 작년이면 아주 기뻐하며 응했을 청탁도 다 거절하고 있다. 원래 쓰던 글도 줄이거나, 중단 한 상태다. 대외적인 거절의 이유는 6월 말에 출간하는 여행 에세이 마감에 집중하기 위해서지만, 사실 별로 쓰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개인적으로는 쓰고 싶은 글이 있지만, 모두 다 개인적인 일에 관한 거라 주제와도 맞지 않을 뿐더러 그런 글로 돈을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글 쓰는 사람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당연하겠지. 어느 순간 남에게 보여주고 평가 받는 글을 쓰다보니 잘 쓰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욕심이 나를 망치고 있다. 예전에는 무병을 앓던 무당처럼 머릿 속에 맴도는 이야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막 쏟아 냈던 것 같다. (야하고 이상한 여행기가 거의 이런 식으로 쓴 글이다.) 그런데 지금은 머릿 속에서 억지로 글과 문장을 지어내고 있다. 이유는 잘 쓰고 싶어서다. 맞춤법과 띄어 쓰기, 깔끔한 문장, 좀 더 멋진 비유는 욕심을 넘어 강박이 되어 버렸다. 혹시라도 이 글을 프로 작가나, 오랫 동안 글을 쓴 사람이 본 다면 ' 뭐, 제대로 시작도 안 한 년이 오바하네.'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여튼 이런 생각까지 해야하는 것도 짜증 난다. 다시 예전의 방식으로 글을 쓰려고 해도 이미 그 방식으로는 계속 글을 쓸 수 없다. 바위 안에 박혀있는 원석 그대로를 다듬지 않고 반지 위에 올릴 수는 없는 것이다. 조금만 다듬으면 더욱 빛날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단순히 나 혼자 쓰고 읽는 일기가 아니라 글을 써서 먹고 살려거든 남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남들이 돈을 주고 살 보석이 되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주변에 글 쓰는 사람들 몇몇이 충고 해 주기로는 이럴 때에도 일단 써야 한다고 했다. 글쓰기는 무조건 책상 앞에 앉아 버티는 일이라는 이야길 자주 들었다. 신문사나 잡지사마다 비용 문제 때문에 외부 칼럼니스트를 줄이고 있기 때문에 지금 있는 것들도 놓아 버리면 결국 후회하게 될 거라고도 했다. 이 바닥은 결국 오래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는 말도 들었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못 하겠다는 거다. 조금 기다려 보자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매일 쓰고 있는 메일이 답을 기다리고서 하는 일이 아니 듯 정말 조용히 기다려 볼 참이다. 시간이 지나면 후회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후회는 지금 생각하는 게 아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기다리는 일이다.

 

 

 2. 요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

 

 트위터는 정말 생각을 빼앗아 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 반대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 줄여야 하는 것은 맞다. 날씨가 풀리면 근처 횟집 수족관 앞에서 물고기들을 관찰하고, 그것을 써서 글쓰기 연습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나는 단순히 예쁘고 깔끔한 문장을 좋아해서 그 점에 맞춰 글을 쓰고 싶다. 쓰다보면 문장이 자꾸 길어지는 것도 짜증난다. 어느 분의 추천으로 안정효씨가 쓴 '글쓰기 만보'라는 책으로 문장 연습을 하고 있는데, 하다보니 이것도 아닌 것 같다. 기본적인 것들에 주의하면서 나만의 문장을 쓰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물론 그렇게 하라고 추천해 주신 것이겠지만)

 

 

 6월 말에 책이 나와서 히트를 친다고 해도 바로 일을 그만 둘 수는 없을 것 같다. 책이 몇 권 팔렸다고 돈이 바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신인 작가가 책 한 권 내서 평생 먹고 사는 일은 한국에서는 불가능 인 것 같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 화가 난다. 물론 음악하는 사람들은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에 화가 나겠지. 사실 나도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한번에 두 가지 일을 못하는 타입이라 음악 감상 보단 늘 책 읽기를 선택하게 되기 때문에) 결국 사람은 이기적인가 보다.  

 

 요시다 슈이치 소설을 몇 권 읽고 싶고, 박범신 선생님이 현재 연재 중이 소설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 한지 1년 되면 호주를 가서 2년 정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건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다) 조금 더 비워내기로 다짐도 한다. 연습. 연습. 뭔가 열심히 연습하는 타입이 아니지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면 연습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기도. 앞으로 벌어질 것들에 대해 미리 생각도 해보고, 뭔가를 소망하는 기도. 그런 기도를 하며 지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내 자신에게 집중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겨울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딱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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