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장병 여러분들께.

 

 

이렇게 위문편지를 써 본 게 정말 얼마만인지요. 그게 아니라, 이렇게 누군가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해 쓰는 편지가 정말 얼마나 오랜만인지요. 초등학교 시절 이 계절에는 "국군 아저씨들께." 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제법 자주 쓰곤 했었는데 어느덧 국군아저씨들이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동생들이 되어 있네요. 게다가 이번에는 "섹스 칼럼"과 함께 인사를 하게 되다니! 인생은 정말 놀라워요. 그래서 더 재미있고요.

 

 

안녕하세요. 저는 글 쓰는 여자 김얀 입니다. 그리고 이번 달부터 병영 매거진 HIM에 연재하게 될 <우주 최고 재미진 섹스 칼럼>은 저에게 특히 의미가 있는 글입니다.

 

 

2년 전이던, 그러니까 제가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문득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니던 직장을 무작정 그만두고 서울로 왔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좋은 글을 쓰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개인 블로그에 이런 저런 글을 썼습니다. 그러다 심심한데 그냥 야한 이야기나 한번 해볼까? 해서 글 하나를 썼는데 그 이야기 한 편이 SNS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큰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어느덧 섹스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을 갖고 여러분들에게 편지까지 쓰게 되었네요.

 

 

사실 저는 섹스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랍니다. 문학을 사랑하고 소설가가 되고 싶어 무슨 글이든 쓰고 싶어 혼자 일기 쓰듯 마구 쓰던 차에 이렇게 섹스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을 갖게 되어 어리둥절하기도 했어요. 물론 부담이 된 적도 있고요. 특별한 교훈이나 정보가 없는 재미삼아 써 본 한 편의 글로 여러 사람들의 관심과 다양한 매체에서 러브콜을 받게 된 것도 저도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구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섹스'란 남녀노소 누구나의 관심사이고 우리 생활의 한 부분인데 이제껏 누구 하나 당당하게 이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었더군요. 사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인데도 무조건 감춰야 했죠. 특히나 여자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욕구를 감춰야만 정숙한 여자라고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었고, 때문에 남자들은 포르노나 돈으로 섹스를 사고파는 데서 조금씩 얻는 왜곡된 정보를 정답으로 알고 있었죠. 기성세대들은 성에 있어서는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고 숨기기에 바빴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요즘 애들은 성의식이 땅에 떨어졌다."라고 말하는 어른들이야 말로 음지에선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줬죠. 주변을 둘러보면 편의점만큼 많은 게 러브 모텔이고, 여자가 나오는 노래방, 안마방, 2차야 말로 그들이 만든 거 이상한 성문화 아닌가요?

 

 

저는 어릴때부터 이런 것들이 항상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섹스란 생명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경건하고 조심스러운 일이지요. 하지만 지난 밤 섹스를 한 커플 중 단지 '생명을 만들기 위해' 섹스를 하는 커플들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신이 되면 어쩌지?' 하고 피임을 고민했을 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성에 대해서 무조건 감추려고만 하지 말고 남, 녀 모두가 밝은 곳에서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서로 관계를 하는 둘 사이에서만이라도 좀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무리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이런 이유 때문에 부족함이 많은 제가 여러 사람들의 응원을 받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관심은 회를 거듭할수록 저에게 글을 쓰는 사람으로써의 책임감을 주었습니다. 더욱이 제가 이 제 글을 보고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고 자신의 경험담과 고민들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도 그동안 친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개인적인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습니다. 너무 솔직한 거 아니냐의 친구들의 우려도 있었지만, 결국 저는 이 글 덕분에 더욱 즐거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남녀 관계 아니, 성별을 떠나 인간관계와 인생이란 것에는 정답이 없더군요. 확실한 가치관을 가지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솔직하게 살아 가는 게 정답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너무 뻔한 통계자료를 이야기 하는 것 보다 제가 경험하고,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더 현실적이라 제 이야기들도 가감없이 넣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서울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긴 [우주 최고 재미진 섹스 칼럼]이 더욱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른 두 살인 지금까지도 좌충우돌 여기 저기 부딪쳐 상처를 받아가며 어른이 되어 가는 저의 현재 진행형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는 여러분을 존중합니다.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순결을 지키는 사람들, 각자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본인만의 성적 취향, 그리고 돌아보면 후회뿐인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까지. 저는 여러분을 존중하고, 이해합니다. 특히나 이제 20대 초반, 저와 다른 성별의 우리 장병들께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읽혀지고 어떤 영향을 줄 수 있게 될 지 개인적으로 기대가 큽니다.

 

 

 

존경하는 국군 장병 여러분들, 곧 다가올 겨울 단단히 대비하시고 마음속에는 아직 남아있는 봄의 꽃밭을 잘 가꾸시길 바랍니다.

 

 

 

2013. 10. 사랑을 담아. 김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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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지 HIM에 섹스 칼럼 연재 제의를 받고 오랜만에 설레는 기분이었다. HIM은 우리나라 국방부가 지원하는 육.해.공 군인들의 병영잡지로 60만 국군 장병들이 내무반에서 내 글을 보게 된다는 말이었다. 사실 나는 잡지나 신문의 칼럼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칼럼보다 에세이를 좋아하고 책도 소설책만 보는 나는 심지어 좋은 소설이라 생각하는 것도 주제나 서사 위주가 아닌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이나 전체적인 글의 느낌을 보기 때문에 칼럼은 쓰면서도 어렵고 재미가 없을 수밖에. 게다가 이제 섹스칼럼이면 신물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HIM의 제의를 흔쾌히 수락한 건 내 글이 앞으로 이 나라의 주역이 될 청년들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A4기준 4장이라는 분량이 조금 걱정이기도 했지만, 내용면에 있어서는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했기때문에 부담이 적었다. 사실 섹스칼럼으로 A4 4장을 채우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보통 잡지사의 칼럼은 A4용지 기준 1장 내외) 게다가 알고보면 섹스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는 주제란 다 거기서 거기다. (우리가 섹스할 때 주로 하는 체위가 몇 개 안 되는 것 처럼) 그래서 어떤 내용으로 시작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에 내 블로그에 잠자고 있던 [우주 최고 재미진 섹스칼럼]이 생각났다.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나에게 갑자기 섹스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을 안겨 줬던 그 문제작. 앞서 얘기 했지만, 2년 전 나는 도저히 글을 쓰지 않고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었다. 당시 나 혼자 살기엔 부족함 없던 월급도, 나를 사랑해주던 남자친구도 다 포기하고 였다.

 

 

서른살 봄이었다. 글을 써서 먹고는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방법도 몰랐고 신춘 문예를 준비하려니 사실 일기 한번 제대로 써 본적이 없던 터라 힘들었다. 영등포 좁은 원룸에 몇 달째 틀어박혀 천장만 바라보고 있을 때 사당동에 사는 수련이가 나를 불렀다. 안그래도 월세나 관리비 때문에 다 포기하고 울산으로 내려가야 하나 하고 있을 때 였다. 처음에 수련이가 일단 블로그를 만들고 글을 쓰라고 했을 땐 그냥 흘려 들었다. 내가 존경하는 어떤 문학가도 블로그로 시작해 작가가 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신춘문예나 출판사의 문학상 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고는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그때 수련이가 일단 뭐든 글을 써야 작가지. 그게 어디든 어떤 내용이든 일단 부지런히 써야 작가라고 했다. 사실 말이 소설가 지망생이었지 그때까지 어떤 글이든 A4 한 장을 채워 써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개인 블로그를 만들고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신인 작가들의 처녀작은 거의 본인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처럼 이제까지 내가 그나마 남보다 많이 한 거라곤 여행가서 방황한 것 밖에 없었다. 제목은 [야하고 이상한 여행기]로 처음에는 방콕의 람부뜨리 로드 이야기였고, 두 번째가 런던 빅벤 아래에서 서른살을 맞이했던 이야기였다. 일일 방문자 수는 많아야 50명. 그것도 글 하나가 업데이트 되면 나랑 수련이는 친구들 한테 직접 전화를 해서 와서 보고 댓글도 남겨달라고 일일이 부탁을 한 거였다. 일주일에 하나씩 쓰자는 계획이었는데 여행기 두 개를 쓰고는 너무 힘들다며 그냥 재미삼아 야한 이야기나 써 볼까? (그때는 수련이가 퇴근하고 집에 와서 내가 글 쓴 걸 확인했다) 그냥 수련이를 웃겨주자는 생각에 수련이의 트윗 아이디도 넣고 내 주변 친구들 이름을 넣어 쓴 글이었다. [우주 최고 재미진 섹스 칼럼 _ 채식 주의자의 저녁식사]는 그렇게 쓴 글이다.

 

 

그런데 이 글 하나가 남희석씨의 RT를 받고 트위터에서 돌고 돌아 일일 방문자 수가 5000명이 넘은 것이었다. 덩달아 내 트위터 팔로워 수가 눈깜작할 사이에 늘었다. 수련이와 나는 너무 놀라서 핸드폰도 집어 던지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다음 이야기는 언제 나오냐고 물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칭찬도 많이 들었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니가 쓰고 싶은 건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 사람들이 너를 너무 가볍게만 생각하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도 했다. 나 역시도 그런 것들이 걱정되긴 했지만, 누군가 내 글을 같이 봐주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정말 놀랍고 신기했다. 물론 말할 수 없이 기쁘기도 했고.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씩 블로그에 글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내 인생 처음으로 쓰는 긴 글이었고, 처음부터 연재를 염두하고 쓴 글이 아니라 방향을 잡아 나가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3-4회쯤 왔을 때는 영화사에서 연락이 왔다. 책으로 내고 싶다는 출판 관계자들도 만났다. 시트콤으로 만드는 것도 좋겠다는 PD님들도 있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반응에 나는 마구마구 흔들렸다. '아, 이제 나는 완전 떴구나. 이젠 드디어 글로 먹고 살 수 있겠다.'하고 혼자 김칫국도 많이 마셨다. 하지만 결국 제대로 된 글도 써 본적이 없던 신인이 여기저기에 흔들리다 보니 글은 자꾸 산으로 가고, 단순히 재미있어서 쓰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스스로도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물론 덕분에 여러 잡지사에서 러브콜이 오긴 했지만, 전부 섹스에 관한 글이었다. 점점 내가 가려는 방향과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 글 쓰기를 중단하고 있을 때 다행히 내가 원하던 출판사와 여행기를 계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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