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 아침, 인천 국제 공항

 

 

통장 잔고에 100만원 쯤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공항 ATM에서 잔고를 확인하니 겨우 20만원 남짓. 출국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는 수 없이 엄마에게 전화. 늘 그렇듯이 엄마는 "널 믿는다." 라는 말을 남겼다. 몇 분 뒤 통장에는 100만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6월 20일 오후 2시 창이 공항

 


보리가 택시를 타라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택시비는 너무 아까운 것 같아서 사람들에게 물어 지하철을 이용했다. 어릴 때부터 택시는 아주 급할 때만 타야한다는 엄마, 아빠의 말 때문에 아직까지도 택시를 타는 일은 1년에 손을 꼽아야 한다. (택시 기사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당산 - 인천 공항 리무진 버스 9000(원)
싱가폴 창이공항 - Chinese garden ㅡMRT 3.1 (싱가폴 $)



 



6월 23일 탄 종 파카 스테이션



 

 

 

 

 

탄 종 파가. 특별한 볼거리는 없어도 그냥 건물들의 분위기가 좋았고, 작은 문구점을 발견하곤 노트도 샀다. 정처 없이 그냥 걷다가 우연히 중국식 사원과 그 옆의 이슬람식 사원을 발견해 차례대로 가서 나만의 방식으로 기도도 했다. 가족들의 건강을, 친구들의 행복을 그리고 무엇보다 철 없는 나의 앞날에 축복을.



탄종파가역. 문구점 노트 2.4 ($)
래플스 플레이스역. 야쿤카야토스트 set 4.5 ($)


 

6월 24일 멀라이언 파크

 

 





 

 



플러톤 호텔 앞을 어슬렁 거리고 있을 때, 그들은 그 앞의 브릿지를 건너고 있었다. "사진 좀 찍어줘." 로 시작해서 이 날 하루를 함께 했던 착한 독일 청년들. (좌- 데니스, 우- 알페어) 내일 함께 센토사 섬에 가기로 했는데, 과연 만날 수 있을까?



 

6월 25일 센토사 섬

 

 







 

 

데니스와 알페어와 센토사 섬 관광. 센토사섬에는 3개의 인공 해변이 있는데, 우리는 3곳 모두에서 수영을 했다. 덕분에 콧등과 몸이 빨갛게 타버렸다. 아직도 등이 따끔따끔. 그들은 내일 태국 남부를 시작으로, 동남아시아 4개국 여행을 할거라고 했다. 나를 비롯 모든 여행자들에게 행운이 함께 하길.

 




6월 27일 파크 오아시스 (보리네 집)

 

 



 



 

 

"아직 싱가포르 입니다. 내일 말레이시아로 갔다가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 올 거예요. 별 기대없이 왔던 싱가포르의 미력에 빠져서 좀 길게 있게 되었어요. 덕분에 모든 계획은 다 틀어졌지만.

사는게 다 그렇죠 뭐, 뭐든 생각대로 되지 않고, 야무지게 짜 놓은 계획은 틀어지기 쉽상이고, 언제든 변할 수 있는게 인생이잖아요. 나를 사랑한다고 하던 당신이 이제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된 그 마음처럼요."


 



6월 28일 말라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서 말라카까지는 버스로 4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말레이시아 여행은 인도네시아 마나도에서 일하고 있던 홍이와 함께여서 여러모로 편했다.  

 


 



6월 29일 아침, 말레이시아 미용실

 

 

 

 



 

 

 

왜 그랬을까? 도쿄의 오모테산도도 아니고 긴자도 아닌 이 말레이시아 시골 미용실에 나는 왜 앉아 있었을까? 심지어 파마 비용도 전혀 싸지 않았다. (내가 다니는 한국 미용실보다도 비쌌다.) 그냥 심심한 동네라 뭔가 재미있는 일 없을까? 해서 미용실에 얼굴을 내밀어버린 게 잘못이었다. 방값의 5배나 되는 돈을 내는 내 모습을 보고 홍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몇 시간 뒤 다 풀려버린 머리카락을 보고는 어이 없는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6월 29일 저녁, 길거리 식당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에 비하면 물가가 아주 저렴하다. 낮에는 300원짜리 아주아주 낡은 시내버스를 타고 말라카 시내구경을 했고, 저녁에는 길거리 인도식당에서 현지인들처럼 손으로 저녁을 먹었다. 음료수까지 이렇게 푸짐하게 먹어도 1인당 3000원. 겁없이 현지 미용실에 들어가서 파마를 한 것만 제외하면 아주 완벽한 하루였는데. 흠.

 


6월 30일 쿠알라룸푸르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쾰른 성당과 닮았어)

이제 야간 버스를 타고 다시 싱가포르로 간다.

 

 

 

6월 30일  밤의 고속도로

 

 

자정에 출발한 야간 버스. 쿠알라룸푸르에서 싱가포르로 가는 밤의 고속도로.

버스 안에는 작은 바퀴벌레들이 심심찮게 등장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두운 창 밖을 보다가 문득 여기가 지금 서울에서 울산으로 가는 고속도로인지

내가 지금 여행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내일 아침이면 다시 치과로 출근을 해야하는 건지

뭔가 뒤죽박죽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앉은 홍이는 가끔 몸을 뒤척였다.

홍이는 내일 다시 인도네시아로 간다. 나는 어디로 갈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7월 1일 싱가포르

 

 

 

 

 

싱가포르에서 일상은 느즈막히 일어나선 밍기적밍기적 대다, 쫄래쫄래 아파트 수영장에 가서 태닝하면서 책 보다, 그러다가 더우면 수영하기, 근처 시장에가서 로컬 음식 먹기, 여기저기 동네 기웃거리기.  

이렇게 일주일을 더 보냈다. 그리고 나는 내일 태국으로 간다.

 

 

7월 7일  카오산 로드 (태국)

 

 

 

 

 

 

 

세 번째 태국.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어.' 라며 나는 방콕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이틀 동안 정말 방콕했다. (게스트 하우스 밖을 나가지 않았다.) 혼자 하는 계획 없는 여행이란 정말 좋아. 이틀 동안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전혀 문제 되지 않으니까.

 

 

 

7월 8일 씨엠립 (캄보디아)

 

 

 

 

 

 

오늘은 아침 일찍 부지런을 떨었다. 어제 게스트 하우스 사람들에게 미니 버스로 저렴하게 캄보디아 국경을 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여행자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씨엡림으로 왔다. 택시에서 3시간 동안 우리는 꾸벅꾸벅 졸았다. 23살 그림을 그린다는 여자 아이와 게스트 하우스 2인실을 함께 쓰기로 했다.

 

1인당 1박에 한화로 4천원. 낡은 에어컨과 낡은 침대. 

 

그런데 양치를 하려고 들어간 샤워실에 녹슨물이 나온다. 우리는 결국 생수로 양치를 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다 침실 벽에 붙어있는 작은 도마뱀을 발견하고는 마구 웃었다.

 

 

7월 9일 앙코르 와트

 

 

 

 

 

내리쬐는 태양볕에 땀이 주르륵, 결국 머리를 질끈 묶고. 보면 볼수록,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놀라웠던 앙코르 와트. 건축물이야 사진으로도 볼 수 있지만, 그때 그 곳의 공기, 그때 그 곳의 태양볕, 그때 그 곳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들은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7월 10일

 

 

 

 

게스트 하우스 근처 작은 호텔의 수영장을 발견했다. 2달러짜리 음료수를 시키면 수영장을 종일 이용할 수 있었다. 물장구를 치기도 했다가, 태닝 오일을 바르고 썬탠을 하기도 했다가, 책을 읽기도 하고, 호텔 wifi를 이용해서 한국의 친구들과 이야기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스콜 현상을 만나면 비를 비해, 저 오두막처럼 생긴 레스토랑으로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는 거다. 소나기는 잠시 뿐, 다시 쨍쨍 내리쬐는 태양 볕. 서늘했다가 다시 따뜻했다가, 또 금세 뜨거워져버리는 수영장의 날씨.

 

변덕쟁이 날씨에도 나는 그곳에서 분명 행복했었다.

 

 

 

7. 11 톤레삽 호수

 

 

 

 

 

 

오후에는 톤레삽 호수에서 낡은 배를 타고 강으로 녹아 흐르는 태양을 보았다. 내일은 다시 태국으로 간다. 꼬창이라는 섬에서 며칠을 보낸 뒤 다시 서울로 갈 것이다.  

 

 

7월 12 Co Chang

 

 

캄보디아와 태국의 국경 지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선 나는 이제 더 이상 보통 사람(그러니까 대부분 사람들)의 인생을 살기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직장을 혹은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것과 한 남자와 연애 혹은 중매 후 어느 정도 기간을 거친 후 결혼, 임신과 양육, 노후 등등의 단어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란 걸 알아버린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시작한 여행에서 본의 아니게 나를 찾는 여행이 되어 버렸다. 사실 열 네시간이라는 이동 시간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꾸준히 살고 싶기도 하다가 또 어떨 때는 죽어버리고 싶기도 했다. 

 

 

 

 

 

 

 

 

 

 

씨엠립 - 캄보디아 태국 국경 지역 - 방콕 - 뜨랏 - 꼬창

 

 

총 열 네시간을 도로와 바다에 버렸다. 생각도 같이 버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어쨌든 깜깜한 밤에 도착한 꼬창에서 썽태우(오토바이에 수레가 매달려 있는 미니 택시같은 것)를 타고 번화가로 갔다. 길도 썽태우도 몸도 마음도 몹시 흔들렸던 것 같다.

 

다음날 꼬창에서 난생 처음으로 서핑을 했다. 세상에 이렇게 재밌는 것이 있다니! 제일 처음 야간 산행을 하고 정상에서 야경을 봤던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역시 죽지 않길 잘했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7. 16 다시 방콕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 날. 호텔 방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1박에 30만원이 넘는 방콕 실롬의 일급 호텔. 예전에 같은 직장 동료들이 이곳으로 여름 휴가를 왔다고 했다. 그녀들은 지금 막 맛사지 샵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함께 직장에 다닐 때는 나도 같이 풍족한 휴가를 보냈었는데,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하다. 여행과 함께 나의 여유는 끝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육천원짜리 게스트하우스에서 여덟명과 한 방을 쓰고, 오늘 아침에도 에어컨도 없는 덥고 낡은 식당에 앉아 천원짜리 쌀국수로 아침겸점심을 해결했다. 숙소가 있던 람부뜨리로드에서 이 호텔까지 오는 길 역시도 교통비가 가장 저렴한 방법을 물어물어 700원짜리 수상버스를 탔다. 이제 주머니에는 공항으로 갈 지하철비 밖에 없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고는 천원짜리 쌀국수가 다라서 그런지 손이 덜덜 떨린다. 호텔 방 안에는 내려 먹는 커피가 무료라 평소에는 먹지도 않는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다.

일단 따뜻한 욕조 목욕을 하기로 한다. 그리고 배낭 제일 깊숙한 곳에 넣어뒀던 미니 드레스를 입을 것이다.

 

목욕을 마치고는 한달만에 처음으로 진한 메이크업을 했고, 혹시나 몰라 가져왔다가 한번도 신지 않았던 굽이 높은 샌들을 신었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호텔 바로 내려갔다.

 

오늘 밤은 한달 간 여행의 마지막 밤.

 

나는 조금 즐거울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슬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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