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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은 울산으로 바뀌었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치과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주로 혁오의 새앨범을 듣고 일어나고 

자기 전에는 남이 쓴 소설과 에세이를 읽는다

 

일요일에는 버스를 타고 도서관으로 간다

음악 듣고 영화 보고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다음 책을 구상

주변 환경은 조금 바뀌었는데

꾸는 꿈은 여전하구나.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쓸 수 있다

다시 한번 기를 모으고

도 -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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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

<바다의 얼굴 사랑의 얼굴>은 처음부터 내가 정해 둔 제목이었다. 책이 출간되기 전에 출판사 대표님은 <내가 사랑한 얼굴>이 제목으로 좋겠다고 하셨는데 내가 고집을 부렸던 제목.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사랑한 얼굴>쪽이 에세이 제목으로는 확실히 임팩트가 있는 것 같아 약간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바다의 얼굴>은 나의 유년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고, <사랑의 얼굴>은 서른 살에 내가 했던 지독했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 굉장히 서정적일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내용은 조금 어둡고 무서운? 이야기들. 하지만 어둡고 무서운 이야기로만 남기지 않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2. 문장

[아버지는 운이 없는 남자였다. 거의 매일 술을 마셨고, 자정이 넘어서야 “울고 싶어라”를 부르며 집으로 왔다. 모든 것이 아버지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그 시절, 나는 덩달아 운이 없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항상 첫 문장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거기에 홀려? 글을 써 나가는 타입이다. "아버지는 운이 없는 남자였다." 이 한 문장이 이 글을 시작하게 된 이유였는데 이 문단은 결국 후반부로 빠졌다. 언제나 첫 문장은 고정으로 수정을 해 본 적이 없어 이 문장을 뒤로 빼야 할 때 엄청나게 고민했다. 첫 문단을 뒤로 보냈다는 글을 거의 통째로 몇 번이나 고쳤다는 뜻. 이 책은 경장편 정도의 분량이지만, 이 정도 분량의 글을 써 본 게 처음이라 정말 힘들었다.

 

3. 문장 2

[없던 일이 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책을 열면 처음 보이는 이 문장은 원래 맨 마지막에 오는 문장이었다. 수정되기 전의 문장. 대부분의 문장은 잘려 나가고 맨 마지막 문장만 살아남았다.

-누군가는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쓴다. 살기 위해. 누군가는 모래 위에 집을 짓고, 더 잘 살기 위해. 누군가는 바다를 땅으로 메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버리기 위해 쓴다. 때론 비워야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 결핍이 욕망을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을 버려야 사랑을 가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다의 여러 얼굴들, 사랑의 여러 얼굴들. 내가 그들을 발견한 순간부터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야말로 이 모든 것을 주시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없던 일이 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

 

 

4. 표지

 

출간 전, 표지 디자이너님께 핑크와 파란색과 젤리피쉬 이미지를 말씀드렸었다. 처음 표지 디자인은 세로 방향의 물결이었는데, 시안을 받고 너무 마음에 들어 심장이 쿵쾅 거렸다. 여러 의견을 수렴해서 물결을 가로로 하고, 반투명 띠지를 입혔다. 나와 허리 언니, 제이와 제이의 친구들, 호주 커튼 대학 디자이너 학과 친구들의 여러 의견을 조합해서 파란 물결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결국 핑크와 블루를 50:50으로. 책은 일반 책보다는 조금 작은 사이즈. 개인적으로 작은 사이즈 책이 좋다. 택배로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책이 정말 예뻐서 한참 좋았다.

 

5. 교정

 

2015년 7월 한국으로 돌아와서부터 쓰기 시작해서 2016년 2월 말 초고를 넘겼다. 초고를 넘겼다는 건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 그로부터 편집자님의 도움으로 다시 수정에, 수정. 결국 6교까지 갔다. (첫 책은 3교에서 끝낸 것 같은데) 이번에는 정말 지독하게 했다. 6교를 넘긴 것이 2016년 8월 10일. 초판 인쇄일이 8월 18일. 그러니까 인쇄하기 일주일 전까지 붙잡고 있었던 것. 특히 이번 작업에서는 편집자님의 도움이 컸다. 달 출판사의 김지향 편집장님. 유능한 사람과 일하는 기쁨을 알려 주셨다. (특히나 내 책을 봐 주실 때 임신 중이셨는데, 책의 어두운 부분이 죄송스러웠다.)

 

6. 놀라운 일

책이 출간되고 나서 몇 달 간 고민하다 윤대녕 선생님께(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선생님이 가장 좋은 호칭일 것 같아서) 책과 편지를 보내 드렸다. 20대 후반에 처음 작가님 책을 읽고 난 후, 항상 그 글에 반해 있었고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늘 윤대녕을 꼽았다. (국외 작가로는 무라카미 류) 한 번도 뵌 적이 없고, 아직 특별한 인연이 닿은 적이 없지만 편지를 쓰자 생각을 하니 책의 반응이 늦어 속상하다고 앓는 소리까지 했다. 편지는 연습장에서 연습으로 몇 번 쓴 다음 편지지에 옮겨 적었는데 이렇게 불쑥 댁으로 책을 보내는 게 혹시 실례가 되지 않을까 며칠 고민했다. 덕분에 편지를 쓴 날짜와 우편을 보낸 날짜가 꽤 차이 난다. 주소는 출판사에 여쭈어 보았다. 

몇 달 뒤, 내내 경황이 없어 책을 좀 늦게 읽어 미안하다는 선생님의 메세지를 받았다. 책이 무척 좋았고 계속 글을 써 주길 바란다는 당부가 있었다. 산문과 소설의 중간 형태의 글이 마칠 때는 소설의 이름으로 남았다고도 하셨다. 지극히 문학적이고, 고유하고, 정갈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제 김얀의 독자가 되었다는 말에 몇 달동안 찾아왔던 무기력이 날아가 버렸다. 메세지를 받고 너무 기뻐서 방글방글 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제이가 기쁜 얼굴로 무슨 일이냐고 했다. 내가 제이 책장에 있던 상춘곡(아시아 출판사에서 Song of Everlasting Spring라는 제목으로 영문 번역이 되어 있는 책으로 내가 제이에게 선물한 적 있다.) 을 꺼내 들고 "Author 윤이 내 책이 너무 좋았대!"라고 말하니 제이도 "Nice!" 하면서 신나했다. 복권 당첨이라도 된 것 마냥 몇 시간을 상기된 얼굴로 있었다. 선생님도 아마 그걸 아시고, 이렇게 격려해 주신 거겠지. 

내가 좋아하는 윤대녕 선생님의 단편 소설 베스트 3 "배암에 물린 자국" "풀밭 위의 점심" "상춘곡" 

 

7. 독자와의 만남 

출간 후, 출판사에서 주최한 행사 외에 개인적으로 <독자와의 만남>을 몇 번 진행했다. 내가 주최한 것이므로 작가와의 만남이 아닌 독자와의 만남이라 이름했다. 주인공은 독자님들. 늘 어떤 분들이 내 책을 좋아해 주실까 궁금했는데 예상대로 20대 중, 후반 여성분들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늘 자리의 반을 내 친구들이 채워 주었다. (친구들 너무 고마워.) 사실 남들 앞에 서서 뭔가 말을 한다는 게 나에게는 어렵기만 했는데 이번 책에 대해서는 그래도 할 말이 조금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혹시나 지루하지 않을까 싶어 행사 시간을 늘 1시간에서 1시간 반으로 잡았는데 돌이켜 보니 너무 짧고 아쉬웠다. 멀리서 와준 분들도 많았는데 좀 지겨울 때까지 수다를 떠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고......  아무쪼록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감사합니다.

 

8. 가족의 반응

아빠는 아직 내가 글을 쓰는 게 그저 안타깝고 못 마땅 한 것 같다. 이번 책을 읽고는 책을 던져 버리고 싶고 남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보여줄 수도 없겠다고 했다. (첫 번 째 책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을 안 보여 준 건 잘 한 일 같다.) 엄마는 첫 번 째 책보다 글이 깊어졌고, 물 흐르듯이 매끄럽게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도 했다. 형부는 책 속에서 ㄷ과 내가 "사랑"에 관한 말한 내용들이 기억나고 역시나 2시간 동안 집중하여 책을 읽었다고 했다. 언니는 여전히 주변 사람들에게 바쁘게 홍보하며 나를 응원해주었다. 지우는 책 프로필의 사진을 보고 "어~ 이모네? 이거 이모 책이야?" 하면서 책이 이쁘다고 해 주었다. 책의 표지를 보고 핑크는 하늘이고 파랑은 바다라고도 했다. 책이 나왔던 작년에 지우는 4살이었다.

 

9. special thanks to

책을 사랑하는, 유능하고 따뜻한 달 출판사 식구들. 첫 책을 낼 때는 별생각 없이 그저 조마조마하기만 했는데 이번에 확실히 느낀 것 같아요. 이 자그만 책 한 권이 완성되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세세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병률 대표님, 이렇게 멋진 일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늘 부러워하고 존경합니다. 그리고 나의 친구들. 사랑하는 독자들. 내가 어떻게 해야 모두에게 좀 더 나은 것을 드릴 수 있을까요?

나의 가족. 제이. 그리고 ㄷ. 지난 순간들. 앞으로 올 시간들. 그것들이 어떤 것이든, 글을 쓰는 삶이라면 내겐 전부 보석으로 남겠지요. 어느 독자분의 말씀처럼 이 책을 기점으로 많이 달라질 내가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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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1월도 마지막이다.

한 달 동안 뭘 했나 생각해 보니 그냥 헛웃음만 난다.

새해엔 새로운 마음과 함께 굳은 다짐을 했는데 곧 흐지부지

그러다가 (다행히) 구정이 되어 다시 새롭게, 이제부터가 진짜 2017년이라며 다시 다짐,

그런데 벌써 1월이 다 가버렸네.

어째서 시간은 이렇게 빨리 흘러 버리는 걸까.

서른여섯이 되었다는 것도 정말 받아들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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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리로 가는 표를 끊고는 언니와 마주 앉아 그때 이야기를 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때의 일들을 하나씩 이야기 하자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때론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나는 이 이야기들로 소설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언니는 네가 쓰고 싶은 건 뭐든 써도 좋다고 했지만, 너무 부정적인 기억에만 맞춰져 있는 게 아니냐며 걱정을 담아 말했다. 그 시절은 분명 우리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지만, 좋았던 기억도 많지 않냐고 했다. 예를 들면, 아빠가 만들어 준 나무 침대나 텃밭에서 토마토를 길러던 일, 동네 노래자랑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에 이주노 역할로 무대 위에 섰던 일 등을 말했다. 물론 나 역시 모두 기억하고 있는 일이다. 비록  지금까지도 그 부정적인 사건들이 더 깊이 각인되어 있다고 해서 미조리에서 있던 일이 죄다 지옥이었던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분명 그런 일들을 보고, 겪고, 들었는데도 어떻게 지금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겠냐고 했다. 



 

국민학교 아래 개미 집에 살던 열살도 안 된 여자 아이가 늙은 남자 몸 위에서 수영하듯이 움직여야 했던 이야기며, 나와 친했던 여자 아이가 세 번째 결혼을 하는 엄마를 "큰 언니"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일들. 세상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잔인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변한 게 없는데 어떻게 좋은 기억만 하며 살 수 있겠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언니는 만삭에 가깝게 부른 배를 말없이 쓰다듬고는 내 찻잔에 더운 물을 다시 부어주며 그래, 어쨌든 열심히 써 보라고 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다보면 꼭 그만큼씩 하고 싶은 것들이 점점 줄어 들던데, 아직도 그만큼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좋은 거라고 웃으며 말했다. 

 

같은 부모 아래서 같은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언니와 나는 정말 달랐다. 1년에 12명의 남자를 만났던 나와 달리 언니는 첫사랑과 12년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직장 그만두기를 밥먹듯 하고 모은 돈으로 해외를 쏘다녔던 나와는 달리, 첫 아이를 출산 하기 전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직장을 다녔다. 외모는 좀 비슷한 분위기가 있지만, 성격 역시 전혀 달랐다. 하지만 언니는 내가 어떤 일을 결정하더라도 지금처럼 응원하며 따뜻하게 도와 주었다. 내 첫 번째 책이 나왔을 때, 그 내용이 13개국 13명의 남자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언니네 유치원 학부형들에게 "제 동생이 그토록 원하던 작가가 되었어요. 내용은 조금 야하지만요. 너무 놀라진 마세요." 하며 웃으며 책 선물을 하기도 했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배려심 많은 언니는 그래서 엄마가 될 수 있었고,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겠지. 언니와 나는 '엄마'와 '작가'처럼 다른 듯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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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 며칠 사이 다시 자신이 없어졌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모두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또 그게 아닌 것 같다. 왜 쓰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서 도대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솔직하게 쓴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그건 블로그에 있을 때나 가치있는 것이지, 출판사의 마크를 달고 편집자와 디자이너, 마케팅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나오는 상품(문학도 결국 상품인 것이다)이 되려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요 며칠은 노트북과 데스크탑을 동시에 켜서 보고 있다. 똑같은 글이지만, 노트북엔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램에 글이 있고, 데스크탑엔 한글 97에 글이 있다. 같은 글이지만, 사용 프로그램이나 글씨체 따라 다른 느낌이다. 가끔은 티스토리에 비공개로 올려놓은 글을 핸드폰으로 읽어 보기도 한다. (가독성이 좋다) 어떤 작가는 글을 완성한 후 소리내어 읽어 보라고도 하던데 그건 95%정도 완성이 되면 해볼 참이다.


내 글이지만 너무 많이 읽어서 꼴도 보기 싫은 글을 숨을 크게 한번 쉬고 다시 처음부터 읽어 나간다. 단어 배치를 다시하고, 문장 배치 다시. 사실 이건 아직도 재미있을 때가 많다. 아는 단어가 확실히 부족한 것 같다. 분량을 늘리려고 필요없는 에피소드를 넣은 것들을 가지치기한다. 한 줄 쓰는 건 너무 어려운데 지우는 건 몇 초가 안 걸리네? 욕이 나오는 순간이다. 꼭 필요한 에피소드인데 다시 보니 사족이네? 아깝지만 또 지워야 한다. 전개가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는 것 같다. 전반적으로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느낌?

글을 안 쓰고 있을 땐, 이러고 있음 안 되는데 글 써야 되는데 하는 걱정만 하고 있는 꼴이라 쓰지 못해도 일단 앉아 있어야 마음은 편하다. 그런데 종일 앉아 있다 보면 허리가 아프고 엉덩이가 자꾸 처지는 느낌이다. 빨리 늙으면 안 되는데 내 남자친구는 겨우 21살인데......글만 생각하다보니 이제는 이 이야기가 과연 재미있을까? 남들이 시간을 내서 볼만한 이야기인가?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지나 않을까? 이것이 어떻게 하면 문학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꼬리를 문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 큰일이네. 포커스가 완전 나가있다는 거다. 심지어 오늘은 그냥 글 안 쓰고 다시 치과나 다니면서 사는 건 어떨까? 하면서 교차로 신문 구인란도 뒤져봤다.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접시에 포도 한 송이 담아와서 침대에 누워 책을 보던 스물 몇살의 여름밤도 생각이 나고......
아니면 스무살부터 스물네살까지 만났던 Y랑 그대로 잘 만나다가 결혼해서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Y가 군대 갔을 때 너무 외로워서 딴 남자랑 잔 적은 있지만 그땐 Y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었는데 (지금 Y는 결혼해서 아기도 있다. 잘 살고 있겠지?)

잘 쓰기 위해서는 삶을 잘 살면 되겠지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데? 너무 주관적이다. 한살 한살 먹을수록 나는 사람들의 질문에 답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이젠 남자를 만나는 것도 지겹다. 지금은 이름도 잘 생각 안 나는 사람들을 만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것 같다.
아마 J가 마지막 남자가 될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고......

어서 이 글을 끝내고 싶다. 다시 점점 몸이 아프고 제이에게도 매일 힘들다는 얘기만 하고 있다. 쓰지는 않으면서 걱정만 하고 있다.

사실 이런 투정도 잘 쓰고 싶은데 잘 안 되니까 그런거다. 더 잘 하고 싶고 또 이번에는 정말 잘 쓰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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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면 한국에 도착할 제이를 마중하기 위해 서울로 가는 중이다. 휴대폰 코레일 앱으로 기차표를 찾다가 다른 것보다 만원이 저렴한 표가 있어 별 확인도 않고 예매를 했다. 알고보니 울산에서 수원까지는 KTX로 가고 수원에서 서울까지는 일반 철도를 이용한다는 기차였다. 그러고 보니 다른 KTX열차 보다 40분 정도 더 걸리는 것 같다.

 

9월까지는 원고를 완성하겠다 다짐도 하고 출판사에도 그렇게 전했는데 9월도 얼추 끝이나 버렸다. 오늘이 12일이긴 해도 제이가 휴가로 2주로 머무는 동안은 글을 쓰지 않을 거라서 그러고 보면 9월에 소설을 마무리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호주에서 돌아와서 2달 정도 울산에 있으면서 제이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사실 호주에 있으면서는 그래도 얼른 한국에 가서 소설을 써야한다는 생각이 더 컸는데.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제대로 글도 쓰지 않고 매일 제이와 화상 통화를 하고 메신저를 주고 받았다. 지금 써야 하는 글이 나의 유년 시절과 전 남자친구 이야기라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 그러는지 모르겠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과거의 그때로 돌아가야 하는데 제이는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매일 아침 글에 집중하고 좋은 글 쓰라는 문자를 보낸다. 나는 문자를 받으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글의 구상은 거의 다 끝났고, 나는 전 남자친구 부분은 손도 대지 못 하고 유년 시절의 기억만 깨작거리고 있다. 자꾸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한다.

 

그는 한국어를 모르니 내 글을 읽는 게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나는 숨기고 싶지도 않다. 나는 글을 마치면 제이에게 읽어 주기로 했다. 제이는 내용을 얼추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이 소설을 세세하게 듣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 건강하고 천진한 몸에서 쳐진 어깨와 알 수 없는 눈동자를 볼 생각을 하니 나도 마음이 아프다.

 

#

출판사에서 받은 '강동쪽의 기담'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가고 있다.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났고 두 시간은 더 가야한다. 첫 번째 책을 쓰고 두 번째 소설을 계약 했을 때 출판사에서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의 '여명'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처음에는 잘 읽히지가 않아 매번 실패하고 있다가 몇 년이 지나고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책이 읽혔다. 털실처럼 부드러운 문장들이 촘촘하게 짜여진 좋은 책이다. 요즘은 책을 읽으면 단순히 즐긴다기 보다는 공부를 한다는 생각으로 읽게 된다.

솔직하게 쓰는 것. 나는 어떤 기교보다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뛰어난 기교야말로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진실로 쓰는 것이다. 자신조차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 기생촌에 관한 글(강동쪽 기담)을 읽고 있다보니 이번에는 꼭 군항제를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해에는 나를 좋아해주는 이모도 있고, 울산과도 가까운데 왜 한 번 가 볼 생각을 못 했을까. 사람이 너무 많은 건 싫고, 평일로 날을 잡아야 겠다. 내년 봄은 아직 멀리 있는데 나는 벌써 책을 덮고 이렇게 신이 났다.

 

 

2015년 9월 기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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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볼 때, 음악이 있으면 집중이 어렵다. 시간이 나면 주로 책을 보는 편이라 음악을 듣는(감상) 일이 드물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가수도 없고, 특별히 좋아하는 노래도 없다. 그런데 호주에 와선 책 보다 음악을 더 듣는 것 같다. 일단 한국에서 가져 온 책이 많지 않고, 얼마 전 스피커를 산 것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은 정말 없지만, (정말 없어서) 요즘에는 클래식을 듣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유투브에 들어가 모짜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아웃 오브 아프리카 OST)을 듣는다. 집에 돌아 오면 베토벤 교향곡이나 피아노곡을 듣는다. 음악을 들으면서 위키백과로 클래식 음악가들에 대해 검색도 해 본다.(물론 대부분이 죽은 사람들이다.)

얼마 전, 백건우씨가 섬마을 음악회에서 비창 2악장 피아노 연주를 하는 동영상을 보았는데, 배경이 바닷가로 정말 근사했다. 그곳이 어디인 지 검색을 해 보진 않았지만, 남해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남해에서 울산으로 전학을 왔던 초등학교 5학년 때가 생각났다. 한 학년에 한 학급밖에 없었던 미조국민학교와는 차원이 다른 13개 반이 있었던 울산 신정국민학교. 그때 학교에서 단체로 울산시 교향악단? 행사를 관람하기 위해 문화 센터에 갔다. 방과 후에 매일 뗏목을 타고 장화 신은 뱃사람을 보던 나로서는 검은 정장을 입은 어른들이 진지하게 악기를 연주를 하는 모습이 굉장히 충격이었다. 친구들은 눅눅한 벨벳 시트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썩이고 지겹다고 까불고 했지만, 나는 오케스트라의 첫 곡을 듣고 너무 감동을 받아 눈물이 찔끔 흘리기까지 했다. (물론 옆 아이에게 들키지 않게 잘 참아냈지만) 생각해 보니 클래식에 얽힌 귀여운 추억인 것 같다. 마치 세탁 종료를 알리는 알림음이 슈베르트 '숭어'인 우리집 세탁기 만큼이나 귀엽다.   







백건우/ 섬마을 음악회/ 베토벤 비창 2악장 http://youtu.be/eW9WIQpcX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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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 어찌보면 남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더 쉽고 편한 것 같다.

아빠가 원하는 대로라면 매달 300만원 정도의 월급을 꼬박꼬박 받으면서 생활하는 것일테고

엄마가 원하는 대로라면 열린 사고의 따뜻한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뭘까? 남들은 내가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사실 그것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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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를 그만둔 지 꼭 한달이 되었다. 나는 울산에도 다녀오고 이것저것 구상을 하면서 기운을 내고 있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글 쓰는 일에 흥미가 떨어졌다. 내가 유일하게 욕심을 냈던 것이 바로 글쓰기인데 과연 이상한 일이다. 글을 쓰려고 해도 아는 것 보단 모르는 것이 많은 것 같아 자꾸만 자신감이 떨어진다. 게다가 멋진 말들은 이미 마크 트웨인이나 헤밍웨이같은 사람들이 다 해버렸지 않나. 애인은 아직도 우울과 권태에 빠져있다. 나도 덩달아 우울해진다. 사실 나도 책을 내고 싶다는 평생 소원을 작년에 이루었지만 이상하게 허망한 마음이 크다. 책을 냈지만, 먹고 쓰는 돈은 다 치과에서 벌어야 했으니 상심이 컸던 것 같다. 덕분에 늘 책에서만 봤던 권태감이라는 단어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이번에 울산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권태감은 계속 깊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울산에서 만난 가족과 친구들, 특히 지난 달 1살 생일을 맞은 조카 지우를 보니 다시 욕심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에게 좋은 에너지가 되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단순하지만 지우에게 멋있는 이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지우가 모락모락 커 나갈 때마다 그 옆에서 "지우야.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 그거 믿을 필요 없어. 네가 생각하고, 네가 믿는 것들 그게 정답이야." 라고 말해주려면 지우 옆에 언제나 즐겁게 살아 있어야 한다. 물론 어떤 인생도 매일이 즐거울 순 없다. 하지만 나는 지우에게 이모는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고. "인생이라는 커다란 벽지에 멋대로 쓰고 싶은 것을 쓰며 그래서 이렇게 멋지게 살고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이 내겐 어떤 의미인지, 하루를 산다는 것이 내겐 어떤 의미인지 나는 이렇게 꾸준히 쓰며, 살며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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