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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은 울산으로 바뀌었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치과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주로 혁오의 새앨범을 듣고 일어나고 

자기 전에는 남이 쓴 소설과 에세이를 읽는다

 

일요일에는 버스를 타고 도서관으로 간다

음악 듣고 영화 보고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다음 책을 구상

주변 환경은 조금 바뀌었는데

꾸는 꿈은 여전하구나.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쓸 수 있다

다시 한번 기를 모으고

도 -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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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

 

10시쯤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보통 11시쯤 고스넬스 도서관으로 간다. 고스넬스 지역의 특성 때문인지 도서관에는 주로 흰머리 노인들이 주 사용자다. 아니면 엄마를 따라온 5-6세가량의 어린아이들. 한국과는 다르게 입구에는 대형 퍼즐 맞추기 공간이 있고 가장 인기 있는 코너인 듯 보인다. 주로 노인들이 사용한다.

 

 

 

한국의 도서관은 주 연령층이 학생들과 취업 준비생들로 열람실이 큰 부분일 텐데 호주는 시티 도서관을 제외하고는 공부를 하는 테이블은 많지 않다. 학교 분위기의 책상과 의자 보다 카페 느낌의 쇼파가 많다. 도서관 주 사용자들이 대부분 책을 읽으러 오기 때문인 듯. 

 

나는 주로 넓은 테이블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데 이 테이블에 앉는 사람들은 역시 노인들. 무엇에 그리 열심인고 보면 보통 신문에 나와 있는 가로세로 열쇠 퀴즈를 풀고 있다. 고스넬스는 시티와 차로 30분 거리. 전철상으로 2존에 위치해 있어 집값이 저렴해서 보통 이민자 가족이나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얘긴데 어쨌거나 도서관에는 책과 DVD를 빌리거나 여유롭게 퍼즐을 맞추고 있는 노인들이 많다. (참으로 부러운 부분)

 

 

랭귀지 코너에 보면 여러 나라 언어로 된 책들이 있다. 한국어도 있지만 20여권 정도. 고스넬스 주변 지역의 몇 군데 도서관에도 가 봤는데 한국책이 가장 많은 곳은 캐닝베일 도서관. 50권 정도 있다.  (사진은 고스넬스 도서관의 한국책. 책 선정은 누가, 어떻게 하는 건지. 난생처음 본 책이 많다. 물론 한국의 도서관처럼 각종 강좌가 열린다. 이민자들을 위한 영어 교실이나 아이들을 위한 놀이 교실. 독일어 교실, 프랑스어 교실, 글쓰기 교실 등등 보통 주 1회 과정이고(무료), 특이한 건 털실로 스웨터 뜨기 교실이라던지 화초, 정원 가꾸기 등 노인에게 인기 많은 강좌가 인기 있다.

 

한국에 있을 때도 거의 도서관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친구들을 만났다. 울산에 있을 때는 주로 선바위 도서관과 울주군 늘푸른 작은 도서관을 메인으로 하고 남부, 중부 도서관도 가끔 다녔다. 한국 도서관은 넓은 열람실을 빼곡히 채워 앉은 그 학생들의 기운을 좋아한다. (중고등학교 시험 기간엔 앉을 자리가 없어 돌아오기도 할 정도) 호주의 도서관은 전망과 여유가 좋다. 특히 고스넬스 도서관은, 정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보이는 길게 늘어진 복도와 반대편 후문으로 보이는 초록의 나무들이 아름답다.

 

'혹시나 천국이라는 게 있다면, 그 입구는 이런 느낌이 아닐까?'하고 자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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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

<바다의 얼굴 사랑의 얼굴>은 처음부터 내가 정해 둔 제목이었다. 책이 출간되기 전에 출판사 대표님은 <내가 사랑한 얼굴>이 제목으로 좋겠다고 하셨는데 내가 고집을 부렸던 제목.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사랑한 얼굴>쪽이 에세이 제목으로는 확실히 임팩트가 있는 것 같아 약간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바다의 얼굴>은 나의 유년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고, <사랑의 얼굴>은 서른 살에 내가 했던 지독했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 굉장히 서정적일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내용은 조금 어둡고 무서운? 이야기들. 하지만 어둡고 무서운 이야기로만 남기지 않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2. 문장

[아버지는 운이 없는 남자였다. 거의 매일 술을 마셨고, 자정이 넘어서야 “울고 싶어라”를 부르며 집으로 왔다. 모든 것이 아버지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그 시절, 나는 덩달아 운이 없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항상 첫 문장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거기에 홀려? 글을 써 나가는 타입이다. "아버지는 운이 없는 남자였다." 이 한 문장이 이 글을 시작하게 된 이유였는데 이 문단은 결국 후반부로 빠졌다. 언제나 첫 문장은 고정으로 수정을 해 본 적이 없어 이 문장을 뒤로 빼야 할 때 엄청나게 고민했다. 첫 문단을 뒤로 보냈다는 글을 거의 통째로 몇 번이나 고쳤다는 뜻. 이 책은 경장편 정도의 분량이지만, 이 정도 분량의 글을 써 본 게 처음이라 정말 힘들었다.

 

3. 문장 2

[없던 일이 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책을 열면 처음 보이는 이 문장은 원래 맨 마지막에 오는 문장이었다. 수정되기 전의 문장. 대부분의 문장은 잘려 나가고 맨 마지막 문장만 살아남았다.

-누군가는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쓴다. 살기 위해. 누군가는 모래 위에 집을 짓고, 더 잘 살기 위해. 누군가는 바다를 땅으로 메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버리기 위해 쓴다. 때론 비워야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 결핍이 욕망을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을 버려야 사랑을 가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다의 여러 얼굴들, 사랑의 여러 얼굴들. 내가 그들을 발견한 순간부터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야말로 이 모든 것을 주시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없던 일이 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

 

 

4. 표지

 

출간 전, 표지 디자이너님께 핑크와 파란색과 젤리피쉬 이미지를 말씀드렸었다. 처음 표지 디자인은 세로 방향의 물결이었는데, 시안을 받고 너무 마음에 들어 심장이 쿵쾅 거렸다. 여러 의견을 수렴해서 물결을 가로로 하고, 반투명 띠지를 입혔다. 나와 허리 언니, 제이와 제이의 친구들, 호주 커튼 대학 디자이너 학과 친구들의 여러 의견을 조합해서 파란 물결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결국 핑크와 블루를 50:50으로. 책은 일반 책보다는 조금 작은 사이즈. 개인적으로 작은 사이즈 책이 좋다. 택배로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책이 정말 예뻐서 한참 좋았다.

 

5. 교정

 

2015년 7월 한국으로 돌아와서부터 쓰기 시작해서 2016년 2월 말 초고를 넘겼다. 초고를 넘겼다는 건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 그로부터 편집자님의 도움으로 다시 수정에, 수정. 결국 6교까지 갔다. (첫 책은 3교에서 끝낸 것 같은데) 이번에는 정말 지독하게 했다. 6교를 넘긴 것이 2016년 8월 10일. 초판 인쇄일이 8월 18일. 그러니까 인쇄하기 일주일 전까지 붙잡고 있었던 것. 특히 이번 작업에서는 편집자님의 도움이 컸다. 달 출판사의 김지향 편집장님. 유능한 사람과 일하는 기쁨을 알려 주셨다. (특히나 내 책을 봐 주실 때 임신 중이셨는데, 책의 어두운 부분이 죄송스러웠다.)

 

6. 놀라운 일

책이 출간되고 나서 몇 달 간 고민하다 윤대녕 선생님께(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선생님이 가장 좋은 호칭일 것 같아서) 책과 편지를 보내 드렸다. 20대 후반에 처음 작가님 책을 읽고 난 후, 항상 그 글에 반해 있었고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늘 윤대녕을 꼽았다. (국외 작가로는 무라카미 류) 한 번도 뵌 적이 없고, 아직 특별한 인연이 닿은 적이 없지만 편지를 쓰자 생각을 하니 책의 반응이 늦어 속상하다고 앓는 소리까지 했다. 편지는 연습장에서 연습으로 몇 번 쓴 다음 편지지에 옮겨 적었는데 이렇게 불쑥 댁으로 책을 보내는 게 혹시 실례가 되지 않을까 며칠 고민했다. 덕분에 편지를 쓴 날짜와 우편을 보낸 날짜가 꽤 차이 난다. 주소는 출판사에 여쭈어 보았다. 

몇 달 뒤, 내내 경황이 없어 책을 좀 늦게 읽어 미안하다는 선생님의 메세지를 받았다. 책이 무척 좋았고 계속 글을 써 주길 바란다는 당부가 있었다. 산문과 소설의 중간 형태의 글이 마칠 때는 소설의 이름으로 남았다고도 하셨다. 지극히 문학적이고, 고유하고, 정갈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제 김얀의 독자가 되었다는 말에 몇 달동안 찾아왔던 무기력이 날아가 버렸다. 메세지를 받고 너무 기뻐서 방글방글 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제이가 기쁜 얼굴로 무슨 일이냐고 했다. 내가 제이 책장에 있던 상춘곡(아시아 출판사에서 Song of Everlasting Spring라는 제목으로 영문 번역이 되어 있는 책으로 내가 제이에게 선물한 적 있다.) 을 꺼내 들고 "Author 윤이 내 책이 너무 좋았대!"라고 말하니 제이도 "Nice!" 하면서 신나했다. 복권 당첨이라도 된 것 마냥 몇 시간을 상기된 얼굴로 있었다. 선생님도 아마 그걸 아시고, 이렇게 격려해 주신 거겠지. 

내가 좋아하는 윤대녕 선생님의 단편 소설 베스트 3 "배암에 물린 자국" "풀밭 위의 점심" "상춘곡" 

 

7. 독자와의 만남 

출간 후, 출판사에서 주최한 행사 외에 개인적으로 <독자와의 만남>을 몇 번 진행했다. 내가 주최한 것이므로 작가와의 만남이 아닌 독자와의 만남이라 이름했다. 주인공은 독자님들. 늘 어떤 분들이 내 책을 좋아해 주실까 궁금했는데 예상대로 20대 중, 후반 여성분들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늘 자리의 반을 내 친구들이 채워 주었다. (친구들 너무 고마워.) 사실 남들 앞에 서서 뭔가 말을 한다는 게 나에게는 어렵기만 했는데 이번 책에 대해서는 그래도 할 말이 조금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혹시나 지루하지 않을까 싶어 행사 시간을 늘 1시간에서 1시간 반으로 잡았는데 돌이켜 보니 너무 짧고 아쉬웠다. 멀리서 와준 분들도 많았는데 좀 지겨울 때까지 수다를 떠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고......  아무쪼록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감사합니다.

 

8. 가족의 반응

아빠는 아직 내가 글을 쓰는 게 그저 안타깝고 못 마땅 한 것 같다. 이번 책을 읽고는 책을 던져 버리고 싶고 남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보여줄 수도 없겠다고 했다. (첫 번 째 책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을 안 보여 준 건 잘 한 일 같다.) 엄마는 첫 번 째 책보다 글이 깊어졌고, 물 흐르듯이 매끄럽게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도 했다. 형부는 책 속에서 ㄷ과 내가 "사랑"에 관한 말한 내용들이 기억나고 역시나 2시간 동안 집중하여 책을 읽었다고 했다. 언니는 여전히 주변 사람들에게 바쁘게 홍보하며 나를 응원해주었다. 지우는 책 프로필의 사진을 보고 "어~ 이모네? 이거 이모 책이야?" 하면서 책이 이쁘다고 해 주었다. 책의 표지를 보고 핑크는 하늘이고 파랑은 바다라고도 했다. 책이 나왔던 작년에 지우는 4살이었다.

 

9. special thanks to

책을 사랑하는, 유능하고 따뜻한 달 출판사 식구들. 첫 책을 낼 때는 별생각 없이 그저 조마조마하기만 했는데 이번에 확실히 느낀 것 같아요. 이 자그만 책 한 권이 완성되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세세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병률 대표님, 이렇게 멋진 일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늘 부러워하고 존경합니다. 그리고 나의 친구들. 사랑하는 독자들. 내가 어떻게 해야 모두에게 좀 더 나은 것을 드릴 수 있을까요?

나의 가족. 제이. 그리고 ㄷ. 지난 순간들. 앞으로 올 시간들. 그것들이 어떤 것이든, 글을 쓰는 삶이라면 내겐 전부 보석으로 남겠지요. 어느 독자분의 말씀처럼 이 책을 기점으로 많이 달라질 내가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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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1월도 마지막이다.

한 달 동안 뭘 했나 생각해 보니 그냥 헛웃음만 난다.

새해엔 새로운 마음과 함께 굳은 다짐을 했는데 곧 흐지부지

그러다가 (다행히) 구정이 되어 다시 새롭게, 이제부터가 진짜 2017년이라며 다시 다짐,

그런데 벌써 1월이 다 가버렸네.

어째서 시간은 이렇게 빨리 흘러 버리는 걸까.

서른여섯이 되었다는 것도 정말 받아들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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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

 

 

퍼스는 호주 서부에 있는 도시.  이곳의 여름은 길고 ,건조하고 물론 덥다. 어제의 최고 기온은 무려 41도 였다. 더위가 조금 꺾일 해 질 녘, 뒷뜰에서 플래토(2살, 샤페이)와 놀다가 문득, 구름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보던 제이가 오늘밤부터 천둥비가 올 것이라고 했다. 덕분에 며칠은 시원하겠다.

 

 

 



<제이집 뒷뜰에서 본 하늘: 구름이 심상치 않다>

 

호주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은 어디에서든 하늘을 너무나도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티를 제외하곤 높은 건물이 없으니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눈 앞에 있는 하늘이 있다. 시간에 따라 색이 바뀌는 구름과 그 사이에 마그마처럼 흐르는 노을빛. 호주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하늘은 스카이 블루, 구름은 흰색이라는 공식에 따라 그림을 그리고 있었겠지?

 

<2년 전, 처음 퍼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만난 새벽 하늘>

 

 

 

 

 

<2015 워홀러 시절, 세탁공장 출퇴근길의 하늘: 덕분에 걸어서 30분이 심심하지 않았다>

 

 <이렇게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도 자주 볼 수 있다: 이곳은 워홀 시절 살았던 동네 이스트 빅팍>

 

질서 없이 들어선 고층 아파트에 가려, 틈 없이 이어진 상가 빌딩, 곳곳에 세워진 전신주와 복잡하게 엉킨 전선 거기에 미세먼지까지. 한국에서 이런 하늘을 보기 어려운 이유.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에 일하며 살다보면 하늘 한번 제대로 볼 시간 없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내가 호주에서 늘 하늘에 감탄하는 것처럼 제이가 한국에 오면 늘 신기하게 하늘을 본다. 호주에서 자란 제이는 어릴때부터 '왜 땅에는 사람, 차, 건물로 가득한데 하늘은 아무것도 없는 걸까?' 늘 심심해 보였단다. 그래서인지 제이는 한국의 전신주와 전선을 제일 좋아했다. (하늘에 생긴 거미줄같다고;) 

 

하긴 호주의 하늘이나 한국의 하늘이나 하늘 입장에서는 같은 하늘이고 결국 어떻게 보느냐/보이느냐의 차이일 뿐이겠지.

 

 

<2015년 경리단길에서 제이: 제이의 한국 첫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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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

 

태국인들도 음력 설날을 새해 첫 날로 생각한다. 이것은 제이 엄마표 태국식 차례상. 원래 태국도 준비해야 할 차례음식이 더 많은데 제이 엄마는 그냥 간단하게 한단다. 5가지 과일, 두가지 육고기. 태국 사람이니까 당연히 망고, 코코넛이 들어간다. (나머지는 포도, 만다린, 바나나) 고기는 닭이랑 돼지를 삶은 것이다. 내가 가까이에서 만난 태국인은 제이 가족이 전부긴 하지만, 태국 사람들은 확실히 자유롭다. 자다 일어난 옷을 입고 차례상을 준비하고 바로 기도를 드린다. 덩달아 나도 잠옷 바람으로 차례상 앞에 섰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차례상이 세 군데에 차려지는 것이다. 하나는 부처님께 드리는 상, 두 번째는 땅의 신, 세번째는 돌아가신 제이 할아버지에게 드리는 상. 덩달아 세번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제이 가족이 언제나 행복하길 바랍니다." 내가 부처님과 땅의 신과 제이 할아버지에게 올린 기도.

 

 

뒷뜰에는 부처님 + 땅의 신께 드리는 차례상

 

 

 

안방에는 제이 할아버지를 위한 제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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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

 

 

 

심심한 고스넬스지만, 해 질 녘의 Oval은 정말 사랑스럽다. [Oval: 타원형]이란 이름대로 타원형으로 잔디가 깔린 경기장이다. 경기장이라고 하지만 어떤 경기가 열리는 것은 본 적이 없고, 주로 동네 주민들이 조깅을 하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논다. (그렇게 사용하기에 Oval은 너무 넓고, 잔디 역시 고급이지만)

 

차가 없던 작년엔 늘 이곳을 거쳐 도서관에 갔다. 특히 이곳의 싱싱한 잔디를 밟는 느낌은 정말 특별하다. 신발을 벗어 들고 맨발로 걸어 보면 사박사박 발밑으로 신기한 쿠션감이 느껴진다. 얼마 전에 스포츠머리를 한 제이의 머리를 만지다가 '제이 머리 위를 걸으면 같은 느낌이겠다!' 라고 생각했다.

 

 

플래토와 제이

 

 

 

 

 

 

Gosnells Oval Pano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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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리로 가는 표를 끊고는 언니와 마주 앉아 그때 이야기를 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때의 일들을 하나씩 이야기 하자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때론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나는 이 이야기들로 소설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언니는 네가 쓰고 싶은 건 뭐든 써도 좋다고 했지만, 너무 부정적인 기억에만 맞춰져 있는 게 아니냐며 걱정을 담아 말했다. 그 시절은 분명 우리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지만, 좋았던 기억도 많지 않냐고 했다. 예를 들면, 아빠가 만들어 준 나무 침대나 텃밭에서 토마토를 길러던 일, 동네 노래자랑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에 이주노 역할로 무대 위에 섰던 일 등을 말했다. 물론 나 역시 모두 기억하고 있는 일이다. 비록  지금까지도 그 부정적인 사건들이 더 깊이 각인되어 있다고 해서 미조리에서 있던 일이 죄다 지옥이었던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분명 그런 일들을 보고, 겪고, 들었는데도 어떻게 지금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겠냐고 했다. 



 

국민학교 아래 개미 집에 살던 열살도 안 된 여자 아이가 늙은 남자 몸 위에서 수영하듯이 움직여야 했던 이야기며, 나와 친했던 여자 아이가 세 번째 결혼을 하는 엄마를 "큰 언니"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일들. 세상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잔인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변한 게 없는데 어떻게 좋은 기억만 하며 살 수 있겠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언니는 만삭에 가깝게 부른 배를 말없이 쓰다듬고는 내 찻잔에 더운 물을 다시 부어주며 그래, 어쨌든 열심히 써 보라고 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다보면 꼭 그만큼씩 하고 싶은 것들이 점점 줄어 들던데, 아직도 그만큼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좋은 거라고 웃으며 말했다. 

 

같은 부모 아래서 같은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언니와 나는 정말 달랐다. 1년에 12명의 남자를 만났던 나와 달리 언니는 첫사랑과 12년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직장 그만두기를 밥먹듯 하고 모은 돈으로 해외를 쏘다녔던 나와는 달리, 첫 아이를 출산 하기 전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직장을 다녔다. 외모는 좀 비슷한 분위기가 있지만, 성격 역시 전혀 달랐다. 하지만 언니는 내가 어떤 일을 결정하더라도 지금처럼 응원하며 따뜻하게 도와 주었다. 내 첫 번째 책이 나왔을 때, 그 내용이 13개국 13명의 남자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언니네 유치원 학부형들에게 "제 동생이 그토록 원하던 작가가 되었어요. 내용은 조금 야하지만요. 너무 놀라진 마세요." 하며 웃으며 책 선물을 하기도 했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배려심 많은 언니는 그래서 엄마가 될 수 있었고,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겠지. 언니와 나는 '엄마'와 '작가'처럼 다른 듯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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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 며칠 사이 다시 자신이 없어졌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모두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또 그게 아닌 것 같다. 왜 쓰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서 도대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솔직하게 쓴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그건 블로그에 있을 때나 가치있는 것이지, 출판사의 마크를 달고 편집자와 디자이너, 마케팅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나오는 상품(문학도 결국 상품인 것이다)이 되려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요 며칠은 노트북과 데스크탑을 동시에 켜서 보고 있다. 똑같은 글이지만, 노트북엔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램에 글이 있고, 데스크탑엔 한글 97에 글이 있다. 같은 글이지만, 사용 프로그램이나 글씨체 따라 다른 느낌이다. 가끔은 티스토리에 비공개로 올려놓은 글을 핸드폰으로 읽어 보기도 한다. (가독성이 좋다) 어떤 작가는 글을 완성한 후 소리내어 읽어 보라고도 하던데 그건 95%정도 완성이 되면 해볼 참이다.


내 글이지만 너무 많이 읽어서 꼴도 보기 싫은 글을 숨을 크게 한번 쉬고 다시 처음부터 읽어 나간다. 단어 배치를 다시하고, 문장 배치 다시. 사실 이건 아직도 재미있을 때가 많다. 아는 단어가 확실히 부족한 것 같다. 분량을 늘리려고 필요없는 에피소드를 넣은 것들을 가지치기한다. 한 줄 쓰는 건 너무 어려운데 지우는 건 몇 초가 안 걸리네? 욕이 나오는 순간이다. 꼭 필요한 에피소드인데 다시 보니 사족이네? 아깝지만 또 지워야 한다. 전개가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는 것 같다. 전반적으로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느낌?

글을 안 쓰고 있을 땐, 이러고 있음 안 되는데 글 써야 되는데 하는 걱정만 하고 있는 꼴이라 쓰지 못해도 일단 앉아 있어야 마음은 편하다. 그런데 종일 앉아 있다 보면 허리가 아프고 엉덩이가 자꾸 처지는 느낌이다. 빨리 늙으면 안 되는데 내 남자친구는 겨우 21살인데......글만 생각하다보니 이제는 이 이야기가 과연 재미있을까? 남들이 시간을 내서 볼만한 이야기인가?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지나 않을까? 이것이 어떻게 하면 문학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꼬리를 문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 큰일이네. 포커스가 완전 나가있다는 거다. 심지어 오늘은 그냥 글 안 쓰고 다시 치과나 다니면서 사는 건 어떨까? 하면서 교차로 신문 구인란도 뒤져봤다.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접시에 포도 한 송이 담아와서 침대에 누워 책을 보던 스물 몇살의 여름밤도 생각이 나고......
아니면 스무살부터 스물네살까지 만났던 Y랑 그대로 잘 만나다가 결혼해서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Y가 군대 갔을 때 너무 외로워서 딴 남자랑 잔 적은 있지만 그땐 Y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었는데 (지금 Y는 결혼해서 아기도 있다. 잘 살고 있겠지?)

잘 쓰기 위해서는 삶을 잘 살면 되겠지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데? 너무 주관적이다. 한살 한살 먹을수록 나는 사람들의 질문에 답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이젠 남자를 만나는 것도 지겹다. 지금은 이름도 잘 생각 안 나는 사람들을 만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것 같다.
아마 J가 마지막 남자가 될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고......

어서 이 글을 끝내고 싶다. 다시 점점 몸이 아프고 제이에게도 매일 힘들다는 얘기만 하고 있다. 쓰지는 않으면서 걱정만 하고 있다.

사실 이런 투정도 잘 쓰고 싶은데 잘 안 되니까 그런거다. 더 잘 하고 싶고 또 이번에는 정말 잘 쓰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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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면 한국에 도착할 제이를 마중하기 위해 서울로 가는 중이다. 휴대폰 코레일 앱으로 기차표를 찾다가 다른 것보다 만원이 저렴한 표가 있어 별 확인도 않고 예매를 했다. 알고보니 울산에서 수원까지는 KTX로 가고 수원에서 서울까지는 일반 철도를 이용한다는 기차였다. 그러고 보니 다른 KTX열차 보다 40분 정도 더 걸리는 것 같다.

 

9월까지는 원고를 완성하겠다 다짐도 하고 출판사에도 그렇게 전했는데 9월도 얼추 끝이나 버렸다. 오늘이 12일이긴 해도 제이가 휴가로 2주로 머무는 동안은 글을 쓰지 않을 거라서 그러고 보면 9월에 소설을 마무리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호주에서 돌아와서 2달 정도 울산에 있으면서 제이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사실 호주에 있으면서는 그래도 얼른 한국에 가서 소설을 써야한다는 생각이 더 컸는데.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제대로 글도 쓰지 않고 매일 제이와 화상 통화를 하고 메신저를 주고 받았다. 지금 써야 하는 글이 나의 유년 시절과 전 남자친구 이야기라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 그러는지 모르겠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과거의 그때로 돌아가야 하는데 제이는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매일 아침 글에 집중하고 좋은 글 쓰라는 문자를 보낸다. 나는 문자를 받으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글의 구상은 거의 다 끝났고, 나는 전 남자친구 부분은 손도 대지 못 하고 유년 시절의 기억만 깨작거리고 있다. 자꾸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한다.

 

그는 한국어를 모르니 내 글을 읽는 게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나는 숨기고 싶지도 않다. 나는 글을 마치면 제이에게 읽어 주기로 했다. 제이는 내용을 얼추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이 소설을 세세하게 듣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 건강하고 천진한 몸에서 쳐진 어깨와 알 수 없는 눈동자를 볼 생각을 하니 나도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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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받은 '강동쪽의 기담'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가고 있다.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났고 두 시간은 더 가야한다. 첫 번째 책을 쓰고 두 번째 소설을 계약 했을 때 출판사에서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의 '여명'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처음에는 잘 읽히지가 않아 매번 실패하고 있다가 몇 년이 지나고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책이 읽혔다. 털실처럼 부드러운 문장들이 촘촘하게 짜여진 좋은 책이다. 요즘은 책을 읽으면 단순히 즐긴다기 보다는 공부를 한다는 생각으로 읽게 된다.

솔직하게 쓰는 것. 나는 어떤 기교보다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뛰어난 기교야말로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진실로 쓰는 것이다. 자신조차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 기생촌에 관한 글(강동쪽 기담)을 읽고 있다보니 이번에는 꼭 군항제를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해에는 나를 좋아해주는 이모도 있고, 울산과도 가까운데 왜 한 번 가 볼 생각을 못 했을까. 사람이 너무 많은 건 싫고, 평일로 날을 잡아야 겠다. 내년 봄은 아직 멀리 있는데 나는 벌써 책을 덮고 이렇게 신이 났다.

 

 

2015년 9월 기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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