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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SEOUL - Soul city

여행 2012/04/24 22:58

 

 

영양가 없는 남자였다. 마치 참외껍질처럼.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정로환 같은 똥을 싸는 염소에게나 던져줄 만한 남자였다.

 

그러니깐 서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참외껍질 같은 남자와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바다를 보러갔었다. 먼저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한 건 나지만 바다에 도착하고는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오이도였나? 인천이었나?

 

하여튼 3월 중순이었지만, 밤바다의 바람은 몹시 찼다. 누가 옆에서 "내일은 크리스마스야."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추웠고 그래서 나는 그 남자를 껴안았다. 그리고 그 근처의 모텔에서 1박을 했었다.

 

 

후에, 나는 그 남자를 내 방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다. 밤이었다. 열두시가 넘은 새벽.

 

내 방 창가로 보이는 대형마트도 마감을 했는지 어두웠다. 도로에는 몇 대의 차들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내 방은 영등포시장역 근처의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원룸이었다.

 

잠은 오지 않고 어차피 출근을 할 직장도 없으니 누군가와 함께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지금이 몇 시든, 그게 누가 되었든. 그도 역시 그 시간 누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한 걸까?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이태원근처에 산다던 그는 삼십분도 되지 않아 나의 방에 도착했다.

 

막 잠에서 깬 얼굴인건지, 막 잠들기 시작하려는 얼굴인건지 눈빛이 조금 피로해 보였다. 생각해보니 남자는 내일 출근을 해야 했다. 조금 미안해진 생각이 들어서 부지런히 커피를 준비했다. 전기보트에 물을 올리고, 이사와선 한 번도 쓴 적 없던 고급 찻잔 세트를 꺼냈다.

 

커피는 지난 번 홍대의 어느 커피집에서 샀던 말레이시아 산 커피였다. 가격도 적당했고 맛도 좋은 커피다.

 

물이 끓고, 정성껏 커피를 내렸다. 그리고 예쁜 찻잔에 담아 남자에게 커피를 건넸다. 접시에는 쿠키도 몇 개 담았다. 헌데 그 남자는 마시지 않고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나를 봤다.

 

나는 뭔가 즐거운 이야기를 해 주자는 생각이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남자는 내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그저 내 입술에 묻은 커피를 원했다. 피로한 눈빛으로 다가와 나를 안는 남자를 밀어버리자 그는 그때서야 잠에서 깬 듯 나의 방에서 나가버렸다. 창밖을 내려다보자 주차된 차로 저벅 걸어가는 남자가 보였다.

 

나는 마른 입술을 혀로 살짝 적신 뒤 창문을 열어 남자의 머리위로 침을 뱉었다.

 

물론 5층에서 뱉은 내 침은 남자에게 적중하지 못하고 공중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저 입술을 적신 나의 혀에서 말레이시아 산 커피 맛이 났다.

 

그 남자와는 그게 마지막 이었다. 총 다섯 번 정도 만났는데 아직도 남자의 성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물어본 적이 없거나 가르쳐 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얼굴도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2011년 늦봄에서 초가을 사이.

서울에는 이런 식의 이상한 연애가 유행이었다.

 

 

 

 

2.

 

"몰디브에 가본 적 있어?"

 

"아니"

 

"그럼 지금 가자."

 

"거기가 어디라구. 게다가 지금이 몇 신데?"

 

"바로 이 근처야. 저기 몰디브 모텔"

 

 

2차로 온 종로의 어느 맥주 집에서 속엣 것을 다 게워내고 나를 부축하고 있는 건강한 팔을 잡고 말했다. 당황해 하는 그 남자. 나는 조금 비틀거렸지만 사실 필름이 끊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배란일 근처의 날짜에 내가 먼저 남자에게 모텔로 가자고 했던 걸 보니 나는 그날 조금 취했었던 것 같다.

 

모텔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높은 구두 굽 때문에 발목이 한번 꺾였고, 남자는 다시 그 건강한 팔에 힘을 줘 나를 부축했다. 그렇게 나는 남자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평일 4만원 짜리 모텔 방.내가 먼저 씻으러 들어갔었나? 어쨌든 나는 욕실 변기에 한 번 더 게워내고 샤워기를 틀어놓고 욕조에 누워있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그런데 저 남자는 누구였더라?'

 

한참을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린 것 같았는데, 눈을 떠보니 건강한 팔의 남자가 몰디브라고 적힌 흰 수건으로 내 몸을 닦아주고 있었다. 내 젖은 머리칼이 남자의 어깨에 자꾸 들러붙는다.

 

'저기, 그런데 누구시더라?'

 

내 작은 목소리에 남자도 작게 웃더니 '현호의 친구'라고 했다. 현호는 내 학교 후배였다. 현호도 역시 내 친구와 종로의 어느 모텔 방에 누웠을까? 조심스레 내 몸을 닦던 남자는 모텔 벽에 걸려있던 흰 가운을 가지고 온 뒤 입혔다. 나는 침대 위에서 다시 가운을 열었다.

 

그리고 아침 7시가 넘은 시간. 전화 벨 소리에 눈을 떴다. 국제 전화번호다. 아마도 몇 달째 출장 때문에 상해에 있는 애인이겠지. 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니 지금 어디냐고 어제는 왜 하루 종일 전화를 받지 않았냐고 따졌다. 나는 옆의 남자가 깰까봐 당황했다. 그리고 지금 자고 있으니 오후에 다시 전화하라고 화를 냈다. 그러자 애인은 실망한 목소리로 어제는 자기의 생일 이였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순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건강한 팔을 가진 남자는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자고 있다. 나는 조용히 옷을 챙겨 입고는 몰디브에서 나왔다.

 

평일 종로의 아침. 모텔을 나와 버스를 타러 가는 길. 좁은 골목길의 상점들은 일제히 기지개를 켜고 몸을 튼다. 조금 큰 길로 나가자 정장을 입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람들. 머리카락은 아직도 완전히 마르지 않아 축축했고, 버스 정거장에 서서 몇 분있으니 오슬오슬 몸이 떨렸다.

 

곧 비가 올 것 같던 날씨. 부산하게 움직이는 저 차와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집보다 한 정거장 전에 내려 산부인과로 갔다. 그리고 그 앞에서 30분쯤 기다린 뒤, 그날의 첫 번째 환자가 되어 응급피임약을 처방받았다. 집에 와서 약을 먹고 다시 긴긴 잠을 잤다. 꿈속에서도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3.

 

 

서울에 온 지 두 달 만에 직장을 그만둬버리고는 좁은 원룸 천장을 보고 누워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게만 누워있게 되었는데 문득 생각 없이 산다는 것은 꽤 괜찮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 없이 살다가 참외껍질처럼 영양가 없는 남자를 만나고 염소 똥 같은 얘기를 하다가 오슬오슬 추워져 서로를 껴안는 일 따위 역시 나쁘지 않다.

 

서울에 와 있던 1년 동안 나는 이제껏 가장 많은 남자를 만났다. 하지만 그들과 나는 한번도 깊은 적이 없었다. 알맹이는 없고 껍질만 있었음을 인정한다.

 

서울.

서울 남자.

서울 사람들.

 

어두운 밤 클럽 안의 조명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 그들의 가슴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그것은 고급 옷 속에 가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입을 가리고 웃는다. 하이힐을 신고 바삐 걷는다. 연신 핸드폰 액정에 검지로 그림을 그린다. 지하철을 탄다. 한강을 지날 때를 제외하곤 시선은 항상 바닥. 어두운 밤 클럽 안의 조명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 시끄러운 음악, 흔들리는 스테이지. 그곳에 아슬하게 서서 춤을 춘다. 반짝이는 빛들은 별이 아니다. 다시 함성을 지른다.

 

생각을 하고 살던 생각 없이 살던 어느새 모든 것이 시시해 졌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서울보다 더 큰 서울은 없나? 진짜 나의 서울은 어디에 있는 건가?

 

문득 나는 더 나를 알고 싶다. 그러다가도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아지기도 한다. 더욱 외로워지고 싶다. 오늘은 정말이지 깊은 밤하늘의 진짜 별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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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