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조리로 가는 표를 끊고는 언니와 마주 앉아 그때 이야기를 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때의 일들을 하나씩 이야기 하자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때론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나는 이 이야기들로 소설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언니는 네가 쓰고 싶은 건 뭐든 써도 좋다고 했지만, 너무 부정적인 기억에만 맞춰져 있는 게 아니냐며 걱정을 담아 말했다. 그 시절은 분명 우리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지만, 좋았던 기억도 많지 않냐고 했다. 예를 들면, 아빠가 만들어 준 나무 침대나 텃밭에서 토마토를 길러던 일, 동네 노래자랑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에 이주노 역할로 무대 위에 섰던 일 등을 말했다. 물론 나 역시 모두 기억하고 있는 일이다. 비록  지금까지도 그 부정적인 사건들이 더 깊이 각인되어 있다고 해서 미조리에서 있던 일이 죄다 지옥이었던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분명 그런 일들을 보고, 겪고, 들었는데도 어떻게 지금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겠냐고 했다. 



 

국민학교 아래 개미 집에 살던 열살도 안 된 여자 아이가 늙은 남자 몸 위에서 수영하듯이 움직여야 했던 이야기며, 나와 친했던 여자 아이가 세 번째 결혼을 하는 엄마를 "큰 언니"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일들. 세상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잔인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변한 게 없는데 어떻게 좋은 기억만 하며 살 수 있겠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언니는 만삭에 가깝게 부른 배를 말없이 쓰다듬고는 내 찻잔에 더운 물을 다시 부어주며 그래, 어쨌든 열심히 써 보라고 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다보면 꼭 그만큼씩 하고 싶은 것들이 점점 줄어 들던데, 아직도 그만큼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좋은 거라고 웃으며 말했다. 

 

같은 부모 아래서 같은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언니와 나는 정말 달랐다. 1년에 12명의 남자를 만났던 나와 달리 언니는 첫사랑과 12년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직장 그만두기를 밥먹듯 하고 모은 돈으로 해외를 쏘다녔던 나와는 달리, 첫 아이를 출산 하기 전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직장을 다녔다. 외모는 좀 비슷한 분위기가 있지만, 성격 역시 전혀 달랐다. 하지만 언니는 내가 어떤 일을 결정하더라도 지금처럼 응원하며 따뜻하게 도와 주었다. 내 첫 번째 책이 나왔을 때, 그 내용이 13개국 13명의 남자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언니네 유치원 학부형들에게 "제 동생이 그토록 원하던 작가가 되었어요. 내용은 조금 야하지만요. 너무 놀라진 마세요." 하며 웃으며 책 선물을 하기도 했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배려심 많은 언니는 그래서 엄마가 될 수 있었고,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겠지. 언니와 나는 '엄마'와 '작가'처럼 다른 듯 닮았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얼사얼(다 못한 이야기)  (0) 2017.02.02
2017년 1월의 마지막 일기  (0) 2017.01.31
언니와 나  (0) 2016.02.18
잘 쓰고 싶은 마음  (1) 2015.11.27
9월, 기차에서  (0) 2015.10.30
클래식에 얽힌 귀여운 추억  (1) 2015.02.02
0 0